기고

적극적 주주활동으로 시장감시 주도해야

2017-08-31 12:47:41 게재

MB 정권인 2011년 일이다.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곽승준 위원장이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적극 행사'의 필요성과 이를 독려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특히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지분(2대 주주)을 예로 들며,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해 왔는지 매우 의문시 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발언은 일파만파 퍼지면서 한동안 한국 사회를 달구었다. 재계는 경영권 간섭, 관치금융 의도, 연기금 사회주의 등의 표현을 쏟아내며 결국 이를 무력화 시켰다. 청와대는 '개인적인 발언'으로 마무리 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 '스튜어드십 코드'가 한국 사회의 뜨거운 이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는 타인의 자산을 관리·운용하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다. 투자대상기업의 중장기적인 가치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고 고객과 수익자의 중장기적인 이익 도모가 목적이다. 이를 위해 의결권, 경영진과의 대화, 주주제안, 감시 등 주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의무를 다하자는 행동지침이다. 2011년 곽 위원장의 주장은 취지와 내용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사이, 한국 기업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얼마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1심에서 5년 형을 선고 받았다. 삼성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고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도움을 기대하고 거액의 각종 뇌물을 제공했다는 게 핵심 죄목이다. 최고 정치권력과 최고 자본권력의 부도덕한 유착. 이 부패 커넥션에서 자본시장은, 특히 자본시장 대통령 격인 국민연금은 시장을 감시하기는커녕 공범자 혹은 조력자 역할을 했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보다는 이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에 손을 들어 주었다. 경영권을 놓고 추악한 다툼으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던 롯데그룹 사태도 일어났다.

국민연금은 당시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이 사태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태도를 취했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SK와 CJ 오너들의 횡령·배임·탈세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사건들에서도 국민연금의 태도는 대체로 침묵 아니면 사후약방문이었다. 덩치는 고래지만 목소리는 한없이 미미했다.

한국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아시아 국가에서도 최하위권이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지배구조 순위를 11개국 중 8위로 평가했다. 사실 이 순위를 넘어 본 적이 없다. 총수 일가의 적은 지분율로 그룹지배, 높은 내부거래 성향, 독립성 없는 이사회, 소수 주주 무시 풍토 등은 물론 불투명한 회계와 오너에 관대한 법 집행 등이 그 이유다. 지배구조는 대표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의 원인이다.

현 정부는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관투자자 등 시장감시 기능을 들고 있다. 이는 2011년 곽승준 위원장의 접근 방법이기도 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이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 중 하나다. 그런데 대기업들은 어지간한 기관투자자의 말은 무시한다.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사실 국민연금은 이를 거부할 그 어떤 명분도, 자격도 없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장기투자자로서 전 산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보편적 소유주(universal owner)다. 때문에 사회책임투자 관점에서 전체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시켜야 한다.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을 넘어, 향후 적극적인 활동으로 시장감시를 주도해야 한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 포럼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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