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네이버후드 프로젝트
학문을 넘어 사회개조 나선 진화론
진화론이 생물학을 뛰어넘어 사회로 나온지는 오래됐다. 역사학에서의 발전사관이나 문화전승 단위로서의 '밈(Meme)' 등 인류문화사나 사회의 변화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읽으려고 하는 시도들이 그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진화론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진실을 규명하는 도구로서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세계적인 진화 생물학자이자 진화 인류학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은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진화론을 통해 인간의 조건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의 조건을 개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 사이언스북스가 이번에 새로 펴낸 '빙엄턴 네이후드 프로젝트'는 바로 진화과학이 교육문제, 도시문제, 인종 및 성차별 등을 해결할 수 있을지 실험한 기록이다.
윌슨의 실험대상은 바로 본인이 거주하고 있는 미국 뉴욕주 북부 인구 5만명의 작은 도시 빙엄턴이다. 윌슨은 5년에 걸친 친사회성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빙엄턴의 친사회성 지리정보시스템(GIS) 지도를 만들어낸다. 이 지도를 분석한 결과, 인간본성이 사회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밝혀낸다.
하지만 '빙엄턴 네이후드 프로젝트'는 도시 같은 인간 사회의 공동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고 진화학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윌슨의 큰 프로젝트의 시작일 뿐이다. 윌슨은 '진화론이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부딪치는 문제들에 대한 실용적인 답을 주기 전에는 그 가치를 충분히 증명할 수 없다'고 본다. 진화과학 자체가 각박하고 이기적인 도시를 보다 살기 좋은 도시로 바꿀 수 있다는 게 윌슨의 신념이자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윌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론과 종교간의 화해도 시도한다. 문화적 진화와 심리학적 진화가 세세한 점에서 유전적 진화와 다르지만 그 차이점을 고려한다면 생물다양성과 마찬가지로 인류다양성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윌슨의 유토피아 같은 실험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진화론이라는 도구로 선한 사회를 만들려는 그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고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