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인세 인하했지만 기업들 한국 떠나지 않을듯

2018-01-09 10:51:28 게재

한국 실효세율 OECD 꼴찌권

미국 감세해도 한국과 엇비슷

세율과 자본이동효과 상관 적어

최근 미국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35%에서 21%로 내렸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큰 하락폭이다. 규모로 따지면 한국의 1년 치 국내총생산에 맞먹는 1조5000억달러(약 1630조원·향후 10년간)의 초대형 감세안이다.

재계나 보수층에서는 "글로벌 법인세 인하 추세에 한국만 역행하고 있다"며 한국도 인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한국의 법인세 인상이 수출 경쟁력을 떨어트리는 조치"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분석은 우리나라에서 자본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경고로 이어졌다. 정말 그럴까.

실효세율로 따져보니 =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법인세는 인하되는 추세인 것은 분명하다.

일본도 임금을 인상하고 설비투자를 확대한 기업에 한해 법인세 실효세율(각종 공제를 뺀 실제 세금 부담)을 30%에서 최대 20%로 낮추기로 했다. 프랑스도 법인세 인하를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법인세를 내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실제 기업들이 내는 세금인 실효세율로 따지면 한국은 아직도 '글로벌 수준'에 진입하지 못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조세는 각종 공제·감면 항목이 많다. 따라서 명목세율보다는 실효세율(각종 세액감면 등을 뺀 실제 부담률)을 따져봐야 한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가 영국 옥스퍼드대 기업조세센터 자료를 인용·분석한 데 따르면, 2017년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18%다. 미국(34.9%)과 일본(27.3%)보다 훨씬 낮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8%)에도 못 미치는 하위권이다. 개별 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의 경우 미국이 대규모 감세를 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이 더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일부 법인만 한국이 좀 더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강병구 교수는 "법인세 공제·감면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돼 실질적 세금 부담은 아주 낮다"며 "외국납부세액공제로 인해 수출 대기업의 국세기여도 역시 높지 않다"고 지적했다.

세금 낮다고 기업이 움직이지 않아 = 미국의 법인세율 인하를 놓고 일부에선 '한국 경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말까지 나온다. 우리나라에서 자본 이탈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이다.

미국 정부가 세수 감소를 감내하면서 과감하게 법인세를 내린 의도는 여러 기업을 자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지금 당장 세수는 줄어들 수 있지만 장기로 보면 미국에 돌아오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세수 부족분을 메울 것이란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효과가 한국의 기업 이탈로 이어질 것인지는 별개 문제다. 보통 세율 차이로 인한 자본 이동 효과는 제한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법인세가 낮다고 기업은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시장 규모, 접근성, 노동생산성 등 여러 요소를 종합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금리 차이가 단기 투자자본 이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과 달리, 세금은 직접투자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변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미 감세 효과, 전망도 엇갈려 = 미국의 대규모 감세가 실제 투자와 고용 증대로 이어질 지도 미지수다. 미국의 법인세 인하 역사를 보더라도 투자·고용·소득 등 경제활력을 진작하는 효과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소득 불평등 심화와 국가 재정적자 누적만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도 미국에서는 기업 소득은 늘어나는데 반해 과세는 상응해서 늘지 않는다는 이유로 법인세 인하에 대한 신중론이 만만치 않다. 법 통과 후에도 트럼프의 감세 방안을 '부자 감세'라며 반대하는 여론이 우세할 정도다. 실제 감세안이 실행되면 미국의 재정적자가 향후 10년간 1조5000억달러(미국 정부 추산)에서 2조2000억달러('책임 있는 연방예산위원회' 추산) 늘어난다. 기업의 소득만큼 과세가 되지 않으니, 소득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과거 경험을 보더라도 감세 효과는 물음표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와 2000년대 부시 행정부 시절 법인세 감세정책을 폈다.

하지만 투자가 늘기보다는 기업의 사내유보금만 대폭 늘고 국가 재정적자만 누증됐다. 우리나라 역시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 시절에 감세정책을 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대규모 감세에 호들갑을 떨기보다는, 차분하게 추이를 지켜보며 우리나라 재정정책을 저울질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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