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정치 | 전쟁의 재발견
'죽음'에 대한 전쟁터의 대화들
한반도 '종전'선언이 화두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 중국 등 6.25 한국전쟁의 당사자들이 한반도의 '정전'상태를 종식시켜 보자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전쟁은 아득한 세계의 이야기같다. '무용담'의 한 줄기처럼 영화의 인기테마 정도로 말초신경을 자극할 뿐이다. 그 안에 담긴 죽음의 가치는 왜곡돼 있다. 주인공의 죽음은 관객의 기대에 맞춰 끈질기지만 폭탄과 연발사격에 나자빠지는 엑스트라들의 죽음은 간결하면서도 '흥미'를 자극하는 데 활용될 뿐이다. 한때는 시가전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보면서 '차량전복과 총격전으로 죽어나간 길가던 시민들과 무너진 상가의 처참한 내일'을 생각하기도 했다.
영국의 군사사가 마이클 스티븐슨의 '전쟁의 재발견'은 '밑에서 본 전쟁의 역사'다. 전쟁을 결정하고 전략을 짜는 전쟁유발자가 아니라 죽음과 죽임을 현장에서 만난 '병사'의 시각에서 본 생존 얘기다.
저자는 밀리터리 북클럽을 비롯해 25년 넘게 군사 전문 잡지 편집자로 일하며 '3D로 보는 미국 내전' '애국 전쟁:미국 독립전쟁은 어떻게 싸웠는가' 등을 집필했다.
전쟁의 방식과 죽음의 방식을 잘 연결해놨다. 고대의 전쟁 영웅, 중세 기사들은 전차부대, 기마궁수, 갑주와 창, 쇠뇌와 장궁 등으로 이어지는 무기의 변천과 함께 전쟁의 풍경도 변화시켰다. 흑색 화약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치사율은 현란하게 치솟기 시작했다.
저자는 "병사들은 시대의 방식대로 죽는다"면서 "각 시기는 매우 특유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다"고 했다. 그는 "문화적 배경은 영웅적 행위, 희생의 필요성, 대의의 정당성, 공격적 정신의 포용, 패자에게 느끼는 연민 따위에 관한 태도와 관념이 복잡하게 혼합된 것이거나 이 모든 것을 거부하는 태도와 관념일 수 있다"고도 했다.
전쟁터에 발을 들인 병사들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이겨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베트남, 이라크 전쟁, 제2세계대전 등을 '부도덕한 전쟁'으로 규정했다. 병사들은 '자신을 파견한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확보하지 못한' 결과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내향적인 세계를 창조'해 내야만 했다.
'본모습이 부도덕했기에 매력이 없었고 고국의 국민도 그렇게 느낀 전쟁'에서 그들은 '다른 놈이 나를 죽이기 전에 내가 먼저 그를 죽이는 데'에 몰두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부도덕함은 전략과 전술에 반영됐다. 전쟁 수행방식은 비정규전이었고 적군 전투원과 민간인을 구분하지 못했다.
이 책은 전쟁에서의 대화가 날 것으로 들어가 있다. 눈을 맞춰 듣다가 결국 시선을 피할 수 밖에 없는 단어들이 오갔다.
저자는 "총탄에 맞는 자들이 입에서 마지막으로 내뱉는 말은 '조국을 위하여'라는 감동적인 외침이 아니라 가슴이 미어지게 어머니를 찾는 소리였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