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예방│사이버폭력 피해학생, '숲 치유'로 회복
"친구 피하지 않고 용기 내서 학교가기에 도전해볼래요"
학교생활 어려움 겪는 아이들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 탑승
외로움·소외감 털어내 … '나의 말' 들어주는 '멘토'에 눈물
"명상시간에 깜빡 잠들었어요. 꿈에서 엄마가 내 발을 주물러줬어요." "잠깐 졸은 것 같은데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개운해요." 최단비(가명. 전주 동화중 2학년)양이 환하게 웃었다.
최 양이 꿈에서 발을 만져줬다는 엄마는 실제 명상 강사다. 아이들은 개울 물소리가 들리는 널따란 나무 데크에 누워 가을하늘을 만끽했다. 명상 강사가 가슴속에 담아둔 불편한 것들을 내려놓자고 말했다. 친구도 부모도 선생님도 그동안 힘들게 했던 모든 것을 쏟아내고 털어버리자며 속삭였다. 누워있던 진아(가명)가 엎드리며 소리죽여 울기 시작했다. 손현주 명상 강사가 다가가 '괜찮다'며 손을 잡아주고 어루만져주었다. 간간히 빗방울이 아이들 얼굴에 떨어졌지만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12일 교육부와 울산교육청이 주최·주관하는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가 2박 3일 일정으로 '공주산림휴양마을'을 찾았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전북 4개 중학교 여학생 22명이 참여했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은 처음엔 멘토나 강사, 아무와도 말을 섞지 않았다. 자신의 영역에 최대한 높은 방어벽을 쳤다. 첫째 날 아이들은 숲을 이해하고 친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숲에 둥지를 짓거나, '숲 보물지도'를 만들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숲 데크에 자신들이 잘 텐트를 설치했다. 모든 프로그램과 활동은 조별로 진행한다. 엇박자가 나기도 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는 분위기다. 함께 하면서 친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거나 존중하는 법도 배웠다.
저녁식사 뒤 '우리들의 소원나무'를 만들던 장보현(가명. 온빛중학교)양이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맨토와 프로그램 진행 총괄 센터장이 보현이를 안아줬다. 상담은 새벽 2시가 넘어 끝났다. 숲 치유 프로그램 담당자는 "중 2라는 짧은 시간에 너무나 깊고 많은 상처를 받은 것 같다"며 "보현이가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친구 곁으로 돌아가려면 가정과 학교가 더 많은 관심과 공을 들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숲에서 하룻밤을 보낸 아이들은 새소리에 잠을 깼다. 아침인사로 '푹 잘잤어요' '학교에 가야 하는 줄 알고 깜짝 놀랐어요' '바람이 참 시원해요' 등 평소 하지 않았던 말들을 뱉었다.
아침 식사는 재료를 받아 조별로 지어 먹었다. 식사 도중 춤을 추거나 휴대전화 음악을 스피커에 연결해 노래를 불렀다. 인솔 교사들은 '신기하다' '대단하다'며 아이들의 변화 과정을 지켜봤다.
둘째 날 오후, 식물관찰용 돋보기인 '루페'를 목에 걸고 숲길을 걸었다. 숲 생태계를 관찰하고 배우는 오감트레킹 프로그램이다. 걸으면서 '바람소리'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바람은 소리가 나지 않아요. 나무가 있어서 소리를 낼 수 있어요"라며 깔깔댔다. 오감 트레킹 강사가 나무와 숲, 바람의 관계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라고 했다. 단어를 나열하던 아이들은 "시를 쓰는 것 같다"며 웃었다. 강사가 괭이 풀을 뜯어 입에 넣고 씹자 아이들이 따라했다. "악 ~! 겁나게 시다"며 뱉던 아이, "아닌데? 먹을 만한데?"라며 한웅큼 뜯는 아이들. 큰 상수리나무를 껴안고 나무온도를 재보겠다는 아이들. 아이들은 서서히 숲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숲, 사회면역력을 키워주는 교실= 교육부가 산림청, 코레일과 손잡고 추진 중인 숲 프로그램은 '기관 부처 융합형 치유 프로그램'이다. 효과성은 이미 검증됐고, 여러 치유 프로그램은 특허까지 받은 상태다.
하지만 학교나 시도교육청 반응은 아직 미약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숲을 통한 치유 효과가 입증되고 있어 치유프로그램을 확대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를 위한 기반시설 확충과 함께 숲 교육 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날 송은주 교육부 진로교육정책 과장과 직원들이 숲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을 찾았다. 저소득층과 위기학생으로 분류된 아이들 등 소외계층을 위한 진로교육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다.
선진국들은 오래전부터 '숲 학교'를 통해 '진로와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공교육 과정에서 낙오되거나 지친 아이들을 위한 숲 교육을 정규교육과정에 포함시켰다. 치유와 치료를 위해 병의원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과 전문분야를 접목해 효과성을 높인다. 학생·청소년들이 학교와 사회로 돌아가는 치료 성공률이 높은 이유다. 산림청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숲이 사회면역력을 키워주는 교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라며 "교육과 숲을 융합시켜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사이버폭력 예방과 치유 정책 강화해야= 숲에 든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숲의 질서를 배운다. 이러한 변화는 짧은 시간임에도 눈에 띌 정도로 나타난다. 말문을 닫았던 아이들이 상담을 요구하거나 치유 프로그램에 참석한 후 스스로 몸을 움직인다. 자존감이 높아진 아이들은 대화를 시도하는 등 다양한 변화를 보인다.
13일 저녁, 우울증이 심했던 진경(가명)이는 프로그램 강사와 대화를 마친 뒤 몰라보게 달라졌다. 요리에 직접 참여하고 반찬을 응용해 친구들과 비빔밥을 만들었다. 진경이는 프로그램 강사에게 '제가 만들었어요'라며 비빔밥을 권하며 쑥스러워 했다. 일시적인 반응이라고만 단정할 수 없는 변화다. 문제는 이런 아이들이 학교나 가정으로 돌아갈 경우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대화를 해야 하지만 현실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자녀 치유를 부모와 함께 해야 효과가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숲 치유 프로그램 과정이 짧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위기학생으로 분류된 아이들은 집도, 학교도, 친구도 싫다고 말한다. 대부분 학교 가는 이유를 '친구 때문'에 라고 답했다. 특히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친구와 휴대폰'이 없으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하다며 호소한다. 이런 아이들은 피해의식이 강하고, 사이버폭력 피해 증상이 심각하다는 게 병원 Wee센터 의사들의 증언이다.
숲 치유 프로그램 대상자들은 주로 우울증, 조울증, 선택적함구증, 자폐증, 대인기피증, 불안증 등의 진단을 받은 저에너지군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는 학교폭력 가해자와 함께 '저에너지군' 위기학생으로 분류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들에 맞는 놀이나, 학습 등 교육프로그램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일선교사들의 지적이다. 그동안 정부가 학교폭력 관련, 가해자 중심의 정책을 운영해온 탓이다.
'숲으로 가는 행복열차'를 운영해온 청소년바로서기지원센터(청바지) 관계자는 "부적응학생이나 위기학생이라는 단어도 적합하지 않다. 우리사회가 나서 함께 보듬어야할 피해자일 뿐"이라며 "상처받은 아이들의 마음을 진정으로 받아주고, 화해와 사과, 가치관과 자존감을 높여주는 교육과정이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숲 치유프로그램을 마친 아이들이 각자 생각을 발표했다. 차례가 되자 진경이도 무대 앞에 섰다. 잠시 적막감이 돌았다. "그동안 무서워서(친구들) 학교도 안가고 피하기만 했는데 … 이제 돌아가면 용기를 내서 학교 가는 것에 도전해보려고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당에 모인 아이들과 멘토, 강사들이 힘찬 박수를 보내며 진경이를 안아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