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11월말 예산심사완료의무)'에 곳곳에 구멍 뚫린 국회 예산심사권

2018-11-13 11:37:06 게재

신규사업·남북사업 등 세부내역 미공개 논란

결산 지적사항 3년연속 미반영 48건 달해

강해진 정부 '편성권'에 국회 '심사권' 위축

11월말까지 다음연도 예산안을 통과시키도록 의무화한 국회 선진화법에 의해 국회의 예산심사권이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가 예산편성과정에서 결산심사때 국회에서 지적한 사항을 연례적으로 반영하지 않는가 하면 신규사업이나 남북협력사업 등에 대한 세부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심사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13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와 예산정책처가 내놓은 '2019년도 예산안'에 대한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법률을 새로 만들거나 고치는 과정에 있는 사업을 내년 예산에 대거 포함시켰다. 법이 고쳐지는 것을 봐가면서 심사를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야기 나누는 김수현 정책실장과 진선미 여가부 장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오른쪽)과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이 12일 오전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법안 개정이 늦어지면 심사 자체가 곤란해진다. 예산정책처는 고용노동부의 구직급여. 자영업자 실업급여, 사회보험사각지대 해소, 모성보호육아지원, 핀테크지원, 종합부동산세, 기초연금 지급, 장애인연금 지급 등 8개 사업을 '법 제정과 개정을 전제로 한 예산사업'으로 지목하면서 "사업의 전제가 되는 법령에 대한 제정과 개정 절차가 진행중이므로 법령 개정추이를 고려한 예산안 심의가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법안에 부합하는 않은 예산도 수두룩 = 재정관련 법안에 부합하지 않은 예산도 많다. 사업추진 예산은 편성됐지만 법적근거가 미흡한 사업이 10개이며 이중 신규사업이 9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태 기후정보서비스 및 연구개발사업에 80억원을 편성하고 이를 APEC기후센터에 출연금으로 지원하는 기상청, 국민참여 사회문제해결 프로젝트 사업에 101억원을 넣은 다음 전액을 한국정보화진흥원에 출연하는 행정안전부 등은 출연금 예산 편성의 법적근거가 미흡한 상태에서 편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체육공단의 골프장 부가금은 징수액, 징수비용을 각각 기금수입과 지출에 넣어야 하는데도 순수입만 법정부담금에 포함시켜 예산총계주의 원칙에 어긋났다.

복권기금 재원을 한국장학재단에 출연하는 교육부의 저소득층 장학사업은 보건복지부장관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아 사회보장기본법에 위배됐다는 지적이다.

도시형 교통모델 사업의 경우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로 편성할 때 지자체의 신청과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의견 반영 등의 절차를 거치야 하는 '예산안 편성지침'을 국토부가 무시한 것이라는 문제제기도 나왔다. 국민체육센터 건립지원 사업 중 체육센터 조사분석 연구비가 연구용역비가 아닌 일반수용비에 포함된 것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산안 편성지침을 따르지 않은 것으로 평가됐다.

보조금관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령과 지침을 위반한 사례로는 여성가족부 소관의 청소년수련시설 종합평가사업, 해양수산부의 바다숲 조성관리 사업이 지목됐다.

ODA(공적부조) 일부사업은 편성 전에 기재부와 국제개발협력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국제개발협력위원회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는데도 기획재정부의 예산 심의과정에서 예산안에 포함된 경우도 확인됐다.

◆깜깜이 예산 = 국회가 심사하기 어려운 사각지대도 적지 않앗다. 100억원이 들어가는 특허청 모태펀드 조합이 회수재원을 활용한 재투자에 대해 국회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점이 지적됐다.

통일부가 편성하는 남북협력기금 중 민생협력지원 사업, 도로 철도사업 등에 대해서 정부가 계획액 편성내역과 산출근거를 공개하지 않아 효율적인 예산 심사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세부내용도 모르고 신규사업을 심사해야 하는 상황이 빚어질 전망이다. 내년 예산안에 들어간 신규사업은 466개로 올해보다 123개가 늘었다. 사업규모는 4조6485억원으로 4조8782억원이 줄었다.

예결특위는 "국회에 제출된 세입세출예산 사업별 설명서에는 신규사업에 대해 간략한 개요만 소개하고 별도 항목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면서 "국회가 효율적으로 심사할 수 있도록 예산안 첨부서류에 신규사업의 내용을 자세하게 기재해 국회에 제출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내년 예산안 중 예비타당성조사 없이 편성된 예산이 청년구직활동지원금(1조3252억원), 고용보험 미적용자 출산휴가급여(3608억원), 다함께 돌봄(3110억원) 등 3개 사업에 달했다. 이 사업들은 국가정책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 예비타당성조사가 면제된 것으로 심도있는 심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예산심사 사각지대에 있는 '예산·기금 외 재정활동'에 대해서도 국회는 "국회 심사를 거치지 않아 사전적·사후적 통제가 이뤄지기 곤란하고 다른 개정사업과의 중복성 여부가 충분히 심사되지 않고 있다"면서 위탁선거괸리경비, 옥외광고사업수익금, 체육진흥투표권 증량발행수익금 등을 지목했다.

◆국회 무시하는 정부 = 정부가 국회의 결산심사때 시정요구한 사항들을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2016회계연도 결산 시정요구 중 직전 2개 연도(2014년 회계연도 또는 2015년 회계연도) 결산 때 동일하거나 유사한 내용으로 한번이상 시정요구를 받은 사항이 180건에 달했다. 이중 48건은 최근 3년간 연속으로 시정토록 요구된 내용이다.

예정처는 "반복적인 시정요구가 발생하는 주요 사유는 시정요구에 대한 정부의 조치가 질적, 시기적으로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시정요구 요인이 해소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9.13 주택시장 안정대책과 10.30 유류세 인하정책이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은 점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세수효과로 2700억원의 세금이 더 들어오고 유류세 인하로 에너지세, 개별소비세, 교육세가 줄어들 것으로 봤다.

여당 관계자는 "국회 선진화법으로 11월말까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예산안은 정부안대로 12월 2일 본회의에 회부하도록 돼 있다"면서 "선진화법은 정부와 여당에 매우 유리하게 작용해 국회의 심사권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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