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신뢰를 위한 '징검다리' 인터뷰│송달용 교육부 지방교육자치강화 추진단 팀장
"현장실습 못 보내는 특성화고 교장들 심정, 대통령도 몰라"
화려한 정책만 제시하면 정부역할 끝? …정책 들고 '기업-학교' 현장 뛸 간부 필요
"실행력 따라 정부정책 성패 갈려" … 사회인식 변화와 취업 시스템 개선해야 성공
12월 초, 수능이 끝난 충남 한 중소도시의 일반고교 3학년 교실은 어수선했다. 아이들은 수업시간임에도 군데군데 모여 게임을 하거나 휴대폰으로 다운받은 영화감상에 빠졌다. '자율학습'이라 교실에 교사는 없었다. 특별히 진행할 교육과정도 없었다. 일부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가 군것질을 하거나, 담배를 피우러 갔다고 했다. 아이들은 "대학에 진학할 게 아니어서 특별히 할 일이 없다"고 답했다. 지루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이는 영화 속 장면이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나마,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는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취업을 앞둔 학생들은 취업상담이나 기업현황을 뒤진다. 하지만 가고 싶은 분야 기업에 대한 정보가 어둡다는 게 학생이나 진로교사의 증언이다. 그간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고졸취업'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했다. 하지만 고졸 취업률이 갈수록 떨어지면서 청년취업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에 따르면 특성화고 졸업생 대학진학률은 1990년대 초 8.3%에서 2014년 38.7%로 높아졌다. 반면 76.6%에 달하던 취업률은 44.2%로 떨어졌다. 최근 고졸 취업률은 더 떨어지고 있고, 취업 후 3년을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졸취업률 하락의 본질적인 이유와 대안이 무엇인지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학교 현장에서 진로 방향을 설정하고 취업에 노력해온 베테랑 공무원에게 '고졸취업의 희망'을 들어봤다. 송달용 교육부 지방교육자치강화 추진단 정책협력팀장이 주인공이다.
◆맞춤형 '기업동아리' 수십개 운영 = 송 팀장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양영디지털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했다. 2012년 9월부터 3년 반 동안 '취업강화'를 위해 교육과정과 운영시스템을 새롭게 구축했다. 특성화고는 학생모집부터 어려움을 겪는다. 실제 서울지역의 경우 전체 70개 특성화고에서 2019년도 모집정원이 미달된 상태다. 모집정원을 채우지 못한 학교는 38개교로 54.3%에 달한다. 지역과 학교, 전공에 따라 학생모집 편차가 심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양영고는 이런 어려움을 극복했다. 당시 송 교장은 주변이 공단밀집 지역이라는 점과 중소기업 3만여개가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받아들였고, 학교 취업정책에 접목시켰다. 기업이 어떠한 인력을 원하는지 정확한 수요조사에 나섰다. 학과개편도 기업특성에 맞춰 추진했다. 전자, 정보통신, 소프트웨어, 바이오학과를 비롯한 다가올 미래 산업분야까지 진단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양성 시스템을 구축했다. 학생들이 필요한 전문 기술은 기업에서 찾았고, 학교로 끌어들였다. 기업의 요구와 학생의 적성에 맞는 '기업동아리' 수십개를 만들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기업과 학교간 담은 낮아졌고, 대신 신뢰와 정보공유가 활발히 이어졌다.
양영고는 NCS(국가직무능력표준) 교육과정을 최대한 활용했다. NCS(National Competency Standard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기술·태도 등의 내용을 국가가 산업별, 수준별로 체계화한 것이다. 개인 보유한 능력의 양보다는 '능력의 질'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는지 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송 팀장은 양영디지고에 교육부가 지정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과정형 평가 연구시범학교를 정착시켰다. 기초직업능력을 높이기 위한 교육과정을 10개 주요영역으로 분류하고 각 영역에 34개 능력을 세분화했다. 의사소통, 수리, 문제해결, 자원관리, 자기개발, 대인관계, 정보, 기술, 조직이해, 직업윤리까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모든 분야를 가르쳤다. 교육과정에 편성한 NCS 학습 모듈은 전공 자격증 취득에 크게 도움이 됐다.
송달용 팀장은 "교사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기술 분야 전문가는 기업에서 모셔왔다"고 설명했다. 학교에 새로운 반전이 일어났다. 기업은 원하는 인재를 뽑아갔고, 학생들은 '선취업-후학습'에 쉽게 다가갔다. 현재 양영고는 성남 지역 유일한 ICT·BT 분야 특성화학교로 자리매김했다. 양영고가 지역 산업인력 양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수 있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산업단지의 주 업종과 교과과정을 일치시켜 나간 게 성공 핵심으로 분석되고 있다.
양영고는 올해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 소프트웨어 개발분야 전국기능경기대회 입상, 국가직 공무원 합격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를 배출하고 있다.
◆취업정책 성공여부는 '실행력'= 그렇다고 NCS 교육과정이 모든 특성화고에서 성공한 것은 아니다. '기업-노동부-학교'로 이어지는 삼각편대가 제대로 굴러가야 가능하다는 게 송 팀장의 설명이다. 국가가 제시한 교육과정 모듈만 가르친다고 해서 취업문이 열리는 것은 아니라는 일선 교사들의 증언과 맞아떨어진다. 학교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무엇인지 찾아 나서고, 정부는 이에 따른 적합한 연결과 지원을 해줘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의 역할도 중요하다. 정부 정책을 실현시킬 의지를 학교현장에 심어줄 전문성을 갖춘 '현장형 간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양질의 취업교육이 지속가능하도록 안전한 울타리와 지원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11일 교육부는 '고졸취업 활성화 방안'을 담은 업무보고에서 중소기업 구인난, 대졸실업률 상승 등의 원인 중 하나가 '고졸취업 하락'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10년간 노동시장에서 대졸 이상 인력 초과공급을 75만명으로 진단했다. 교육부는 중등직업교육 체질개선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미래산업과 연계한 학과개편, 자발적인 혁신 지원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장실습을 추진하는 기업의 기준과 절차를 합리화 한다는 방침이다. 직업계고 교원의 개방성과 유연성 정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산학겸임교사나 산업계 현장전문가가 교사가 될 수 있는 여건을 열어주는 셈이다.
그러나 기업과 학교 현장 반응은 차갑다. '누가 나서서 이를 실행시킬 수 있을 것인가'가 핵심이지만 역대 정부는 정책 발표에만 목소리를 높였다고 지적했다.
이론은 맞지만, 현장과 소통하지 않고 만든 교육부 정책과 정책 보도자료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성화고 교장들은 "당장 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은 가동이 멈춘 상태"라며 "3학년 2학기에 현장실습을 보내지 못하는 심정을 대통령과 부총리는 알기나 할까"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현장실습 과정에서 숨진 제주 이민호 군 사건 이후 '안전한 실습장'을 갖추도록 기업에 요구했다. 하지만, '안전한 교육장 설치'가 의무사항임에도 참여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는 게 현실이다. 산업현장에서도 갖추지 못하는 안전시스템을 고3 실습생을 위해 갖출 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보면 차라리 기술과 학습이 제대로 된 전문대 출신을 뽑는 게 낮다는 반응이다. 이를 두고 일선 학교에서는 현장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탁상행정이라며 정부정책을 비판한다. 관련 부처와 기업, 학교가 소통할 수 있도록 정책의 '악순환 고리'를 끊고 국민이 신뢰하는 정책혁신을 주문했다.
송 팀장은 "직장경험이 전무한 일반계교사(임용고시 출신)가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NCS 모듈개발이나 업데이트 속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변화와 흐름을 국가 정책이나 학교현장에서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취업 후 근무 지속성이 떨어지는 이유에 대해서도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참여하는 '고졸취업 포털사이트' 구축도 제안했다.
송달용 팀장은 "전쟁 같은 취업의 관문을 뚫기 위해 '정부-기업-학교'가 소통하고 이해하는 사회융합형 '감동의 교육정책'을 실현해 나가야 한다"며 "정부와 사회, 기업이 나서 고졸 취업자들이 안전하고 먹고 살만한 직장이 될 수 있도록 사회인식 변화와 취업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