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준기 기자의 뚜벅뚜벅 현장 속으로│복원 앞둔 가리왕산 하봉을 가다
사스래나무·물푸레나무·음나무가 조금씩 돋아난다
가리왕산 슬로프 전체 구간 피복률은 5%도 채 안돼 … 강원도 재해방지사업 한다며 '연습 슬로프 복원' 의혹
5월 25~26일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장으로 사용 후 복원을 앞두고 있는 가리왕산 하봉을 찾았다. 올림픽이 끝난 후 2018년 봄과 가을에 슬로프 식생조사를 했고 이번이 세번째 모니터링이다. 이번 모니터링의 목표는 새로 돋아난 식생을 조사하고 주경기장 슬로프를 10개 구간으로 나누어 원래 자라던 식생 표지판을 설치하는 것이다.
25일 산과자연의친구 우이령사람들, 녹색연합, 올림픽반대연대 등 20여명의 참가자들과 원주지방환경청 관계자들은 4대의 사륜구동 자동차를 이용해 하봉 정상(해발 1380미터)에 올라 해발 1000미터 순환임도까지 모니터링을 진행했다.
고산 초본식물들은 거의 사라진 상태 = 1구간인 해발 1380~1350m '신갈나무·철쭉 군락' 상단부에서는 아직 새로 돋아나는 나무 새싹은 보이지 않았고 '그늘사초' 종류로 보이는 사초류가 새로 관찰됐다. 작년 가을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외부 유입종이다.
원래 이 일대는 신갈나무와 지름 15cm 가 넘는 거대 철쭉 군락지였다. 슬로프 양쪽의 숲 경계지역에서는 신갈나무 철쭉 당단풍나무 분비나무 등이 관찰돼 이곳의 원래 식생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잘 보여준다.
조금 아래쪽으로 내려가면서 '산딸기' '눈개승마' '산박하' 등의 초본류와 '참싸리' '사스래나무' '개버찌나무' '물푸레나무' '함박꽃나무' '붉은병꽃나무'(대군락) 등의 목본류 맹아들이 관찰됐다. 붉은병꽃나무는 지난해 가을부터 어린 싹들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키는 작아도 꽃을 피운 개체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2구간(1350~1300m)에서는 '물푸레나무' '음나무' '마가목' '사스래나무' '병꽃나무' '당단풍나무' '소나무' 어린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돌양지꽃' '산오이풀' '대사초' 등의 초본류도 관찰됐다. 모두 기존 가리왕산 하봉에서 자생하는 종들이다.
원래 이 일대에는 '큰앵초' '큰두루미꽃' '연령초' 등 고산지역의 반그늘 상태를 좋아하는 초본류가 많이 있었는데 '큰앵초' 1개체, '큰두루미꽃' 두어개체를 제외하곤 고산 초본식물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3구간(1300~1200m)에서는 '두릅나무' '참싸리' '국수나무' '백양나무' '개버찌나무' '음나무' 등의 어린 새싹들이 관찰됐다. 두릅이나 싸리, 국수나무 등의 관목(작은키나무)들은 원래 숲 가장자리에 자라는 소매 생태계 식물들인데, 이런 관목들이 슬로프가 나출지 상태로 방치된 곳에 침입한 것이다.
4구간(1200~1100m)과 5구간(1100~1000m)에서는 '음나무' '층층나무' '신갈나무' '사시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 등의 어린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스틱 짚고도 걸어내려가기 힘든 급경사 점프 구간 = 26일에는 1000고지에 있는 가리왕산 순환임도에서 출발해서 스키경기 종착지점까지 조사와 팻말 세우기를 진행했다. 스틱을 짚고도 걸어내려가기 힘든 경사 40도 이상의 점프 구간이 많아 조사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6구간(1000~950m)에서는 '시닥나무' '일본잎갈나무' '산겨릅나무' 등의 목본류, '원추리' '산박하' '매발톱꽃'(군락) '큰까치수영' '달맞이꽃' '더위지기' 등의 초본류가 일부 자라고 있었다. 달맞이꽃의 경우 노출지에 자라는 외래식물로 번식력이 뛰어나 열매를 맺기 전에 제거작업이 필요할 것으로 보였다.
7구간(950~900m) 해발 920m 지점은 스키장 건설 과정에서 흉고직경 1.23m의 '들메나무' 노거수가 잘려나간 곳이다. '가리왕산 산신할매'로 불린 이 들메나무는 북한의 천연기념물 '대동리 은행나무'(흉고직경 1.14m)보다 큰 나무였다.
대동리 들메나무는 마을 당목으로 사람들의 보호 속에 자랐지만 가리왕산 들메나무는 무성한 원시림 속에서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면서 자란 개체라 생태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들메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 살아 있을 때 찍은 사진을 담은 표지판을 세우고 다함께 묵념을 올렸다.
연습경기장 슬로프 구간엔 풀포기 하나 없어 = 8구간(900~850m) 아래부터는 작업도로가 연습경기장 슬로프 위로 나 있어 수해복구 상황도 볼 수 있었다.
연습경기장 슬로프는 숙암계곡을 메워 슬로프를 만들었고 지난해 큰 비가 오지 않았지만 골짜기를 메웠던 토석류가 아래로 쏟아져내리는 수해가 발생했다. 지금 강원도는 가리왕산스키장 수해방지사업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이 공사는 수해방지공사라기보다 '슬로프 복원공사'에 가까웠다.
동행한 윤순태 다큐멘터리감독이 드론을 띄워 공중에서 전체 구간을 사진으로 담았다. 공중에서 찍은 사진으로 비교해보니 주경기장 슬로프는 구겨진 옷감, 연습경기장 슬로프는 잘 다려진 옷감처럼 차이가 확연했다.
왼쪽 주경기장 슬로프엔 5% 미만이지만 일부 식생이 돋아나고 있는데 오른쪽 연습경기장 슬로프 구간엔 풀 한포기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게 과연 국비지원으로 시행한 수해방지사업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김영호 우이령사람들 회장은 "지난해 수해는 계곡을 메운 연습슬로프 토사가 깎여서 아래로 흘러내려간 사고인데, 그 구간을 또 복토해서 메우고 있다"며 "이건 재해예방이 아니라 장마철을 앞두고 정부 예산으로 재해유발행위를 집행하고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원주지방환경청도 "이런 방식으로는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계곡부가 다시 무너져내릴 것"이라며 "복원 과정에서 계곡으로 되돌릴 수 있도록 다시 설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문제를 지적하자 재해예방사업 관리감독을 하는 산림청은 "강원도가 설계한 재해방지공사"라며 책임을 강원도로 미루고, 강원도는 "슬로프 복구가 아니라 더 큰 산사태를 막기 위한 응급복구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숙암계곡은 가리왕산에서 중요한 습기 공급처 = 가리왕산 복원은 평창동계올림픽 이전부터 이미 '사회적 합의'였다. '원래의 숲으로 복원한다'는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쳐 가리왕산 숲을 훼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강원도는 올림픽이 끝난 뒤 복원은커녕 "경기장 시설물 유지"를 주장했다.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법 위반'으로 강원도를 고발하고 산림청이 "가리왕산은 합의의 대상이 아니라 복원의 대상"이라고 몰아붙이자 강원도는 다시 '가리왕산 복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기구 구성'을 들고 나왔다.
다시 사회적 합의를 주장한 최문순 강원지사는 '복원을 조건으로' 가리왕산 숲을 훼손했던 동일인물이다. 가리왕산 숲 복원은 이미 사회적 합의사항인데 정부가 왜 또다시 강원도의 합의기구 구성 요구에 동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도 거세다.
현재 정선 주민들은 '곤돌라와 작업도로 존치'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 이런 배경엔 점프 구간(경사 40도 이상의 가파른 구간)이 없어 일반인들이 이용 가능한 연습코스 슬로프를 스키장으로 계속 쓰겠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훼손 전 가리왕산 식생조사를 주도한 이기호 산림기술사는 "가리왕산은 제주도 한라산과 울릉도 성인봉을 제외하고 육지에서 어린 주목이 자라는 유일한 지역인데, 그 이유는 석회암 계곡에서 공급되는 풍부한 습도가 늘 유지되기 때문"이라며 "연습코스 슬로프가 위치한 숙암계곡은 장구목이계곡과 함께 가리왕산에서 가장 중요한 습기 공급처"라고 말했다.
이 기술사는 "슬로프에서 사막과 같은 건조한 열풍이 발생하고 습도가 떨어지면서 주목들도 건강성이 떨어진 상태"라며 "주경기장은 물론 연습경기장 슬로프 구간도 시급하게 숲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은 4일 성명을 내고 "가리왕산의 본격적인 복원을 위해 '국립산림복원기구' 를 설립할 것을 제안한다"며 "강원도와 정선군이 올림픽 유산으로 챙겨야 할 것은 곤돌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산림복원 기술이 집약될 산림복원센터"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