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비? 핌피? 내가 불편하면 다 싫다

2019-07-15 11:16:13 게재

용인 입지 무산된 '네이버 데이터센터'

청년주택은 물론 구청·소방서도 '싫다'

"단절된 삶, 소통의 장으로 끌어내야"

쓰레기소각장 화장장 등 필요한 줄은 알지만 거부하는 현상을 '님비(NIMBY, NOT IN MY BACK YARD; 우리집 뒷마당에는 안된다)'라고 한다. 반대로 공공청사나 첨단기업 등 지역에 이익이 되는 시설을 유치하려는 현상을 '핌피(PIMFY, PLEASE IN MY FRONT YARD; 우리집 앞마당에 지어달라)'라고 한다. 그런데 요즘 님비, 핌피로도 잘 설명이 되지 않는 일들이 늘고 있다. 동일한 시설을 놓고 한쪽은 싫다고 하고, 다른 쪽은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센터' 님비시설인가, 핌피시설인가? = 대표적인 사례가 경기도 용인시 공세동에 지으려다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설립이 무산된 '네이버 제2데이터센터'다. 당초 네이버측은 용인 공세동에 사업 부지를 매입하고 5400억원을 들여 데이터센터를 포함한 클라우드 첨단산업단지를 조성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공세동 주민들은 유해 전자파 발생 등을 우려하며 집회를 열고 반대했다. 결국 네이버측은 "민원을 해소해보겠다"는 용인시에 사전 통보도 없이 지난달 계획을 철회했다.

그러자 인천 전북 경북 등 전국 곳곳에서 네이버 데이터센터 유치의사를 밝히고 나섰다. 네이버는 오는 23일까지 제2 데이터센터 부지 제안 참가의향서를 접수, 서류심사와 현장실사 등을 거쳐 9월 안에 우선협상자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18곳이 넘는 지자체가 네이버에 유치의사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지자체는 일자리 창출, 세수 증대는 물론 도시이미지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기 오산시의 '버드파크' 사업도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이 사업은 시청 민원실 옥상의 유휴공간에 민간기업이 85억원을 들여 동식물 체험교육학습장을 지어 20년간 운영하고 시에 기부하는 내용이다. 오산시는 세금 한 푼 들이지 않고 공공청사를 주민에게 유익한 시설로 활용하는 동시에 지역상권도 활성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했다.

하지만 시청 인근 아파트 주민들과 야당이 반발하고 나섰다. 교통대란을 초래할 게 뻔하고, 공공청사에 민자를 유치해 유료 관광시설을 짓는 것은 특혜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버드파크에 들어서는 새 체험관, 앵무새 활공장 때문에 '조류독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지역 소상공인과 어린이집 관련단체는 아이들 교육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침체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적극 찬성하고 있다.

◆구청·소방서 등 공공청사도 '퇴짜' = 지자체들이 추진 중인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임대주택(행복주택)은 청년세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사업이다.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좋은 주택을 지어 공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업도 지역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곳곳에서 난항을 겪고 있다.

경기 용인의 한 행복주택 사업장에선 주민들이 텐트를 치고 공사를 막았다. 사업시행자인 경기도시공사가 "사업 취소 외에 다른 제안은 적극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타협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법원에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강동구 성내동, 영등포구 등에서 청년임대주택 건설을 두고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주민들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 하락'이다. 시세보다 임대료가 저렴한 청년주택이 들어서면 인근주택 임대료가 하락하고 집값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입주가 이뤄진 서울 가좌역과 오류동역 행복주택의 경우 주변 시세가 오히려 이전보다 올랐고, 상인들 사이엔 젊은층의 유입으로 지역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동안 '핌피시설'로 여겨졌던 공공청사들도 최근엔 주민들에게 퇴짜를 맞고 있다. 서울 동작구의 경우 구청 등 예정지 주민들이 "통합청사가 들어오면 교통이 불편해진다"며 반대했고, 금천구 주민들은 소방서 입주를 반대했다. 서초구에선 지구대 설립을, 한남동 일부 주민들은 공공어린이집 입주를 반대하기도 했다.

◆"공동체성 복원 위해 노력해야" = 전문가들은 이를 '바나나(BANANA, Build Absolutely Nothing Anywhere Near Anybody; 어디에든 아무것도 짓지 말라)' 현상이라고 부른다. "내가 불편하고 싫으면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 않겠다"는 의미다. 문제는 갈수록 이런 현상이 우리사회에 확산되고 있고, 이들을 설득하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심준섭 경기도 갈등관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은 "지금은 공공기관이 제공하는 서비스, 정책, 시설을 공공성을 투영시켜 보지 않고 자신의 이해관계에서만 바라보기 때문에 핌피의 영역은 거의 없어졌다고 봐야 하고, 그런 흐름이 우리사회에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님비' 현상은 공적인 가치, 즉 공적인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싫어서 반대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공공성의 가치조차 인정하지 않고 내가 불편하니 싫다는 식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문제를 풀기위해 정부가 그동안 제시해온 해법은 주로 '의견수렴'과 '인센티브'였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가 입지를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주민의견을 듣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센티브 제공도 주민들이 원하는 내용과 거리가 먼 경우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라면 입지를 정하기 전에 주민들과 대화와 소통에 나설 것을 전문가들은 권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공동체 의식을 되살리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준섭 위원장은 "(바나나 현상의) 이면에는 혼술 혼밥 등 모든 걸 혼자 해결하며 도심에서 '섬'처럼 분리돼 살아가는 세대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며 "보상만으로는 해답을 찾기 어렵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임을 인식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나서서 소통의 공간을 넓혀주고 공동체성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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