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소피 비제 프랑스 에꼴42 교장

"스스로 배우고 서로 고쳐주는 교육"

2019-09-17 11:50:30 게재

교재·교사·학비 없는 IT인재양성 학교 … 한국형 '이노베이션 아카데미' 11월 개교

교사도 교재도 학비도 없는 학교가 있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에꼴42'(학교42)에는 특별한 입학자격도 없다. 학력, 자격증도 필요 없다. 국적도 경력도 묻지 않는다. 18세 이상이면 누구든지 응시할 수 있다. 모든 과정을 마쳐도 학위가 없다.

에꼴42는 선발과정이 특별하다. 1단계로 간단한 비디오 게임을 통한 논리와 추론 능력을 테스트 한다. 이를 통과한 지원자는 2단계로 4주간 합숙을 하며 치러지는 '피씬'(Piscine 수영장)에 참가한다. 이 기간 동안 지원자는 주어진 프로젝트를 동료들과의 협업·상호평가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매년 1000명을 뽑는 에꼴42에는 7만명 이상이 지원한다. 최종 합격자는 평균 3년의 무료 트레이닝 과정에 들어간다.

에꼴42는 프랑스 최대 인터넷 공급회사 '프리(Free)'의 창업자 자비에르 니엘(Xavier Niel) 회장이 2013년 설립했다. 2017년에는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T)기술학교 중 3위에 선정됐다. 프랑스 최대 개발자 대회인 '코딩게임' 참가자 1만3000명 중 최상위 5명이 이곳 출신이다. 2017년 미국 실리콘벨리에 분교가 설립되는 등 여러 나라로 확산되고 있다.
소피 비제는 지난해 에꼴42 교장으로 취임했다. 프로젝트에 기반을 둔 교육학의 강력한 후원자인 소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발자 겸 교수로 웹아카데미, 삼성캠퍼스, Epitech 코딩아카데미 책임자를 지냈다. 사진 한국인력관리공단

우리나라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서울시가 올해 11월 한국형 에꼴42인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설립한다. 지난 10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주최로 열린 '제13회 인적자원개발 학술대회(콘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위해 방문한 소피 비제(Sophie Viger) 에꼴42 교장을 만나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새로운 인재 양성방안에 대해 들었다. '42'는 삶과 우주와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숫자를 의미한다. 더글어스 애덤스의 SF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따왔다.

■에꼴42 설립목적이 무엇인가.

무료 코딩교육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소프트웨어(SW), 정보통신기술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다. 기존 교육은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지 못하고 있다. 학교는 기업으로 부터 재정을 지원받고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얻을 수 있다. 학교와 기업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었다.

■어떻게 3무(교재·교사·학비)가 가능한가.

무료교육은 창립자인 자비에르 니엘 회장의 재정지원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기업 등에서도 지원받고 있다. 가장 의미있는 것은 졸업생들이 지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능이 있는데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기회조차 없어서는 안된다는 철학이다.

교수와 교재가 없는 것은 동료수업인 피어러닝(peer learning)과 동료 간 평가인 피어콜렉팅(peer correcting)이라는 학습법 때문이다. 학생들은 협업을 통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 코드를 풀어 나간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찾지 않아도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이다.

■피어러닝과 피어콜렉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달라.

학생들이 스스로 배우고 서로 고쳐주는 것이다. 즉 같이 협력하면서 각자 다른 해결책을 만드는 창의적인 교육방법이다. 기존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육은 교사가 학생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우리는 학생 스스로 학습을 통해 해결책을 찾도록 한다.

예를 들어 도자기 병을 만들때 전통교육은 강사가 병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은 강사를 따라 모두 한가지 형태의 병을 만든다.

하지만 피어러닝은 재료를 주고 학생들에게 알아서 병을 만들라고 한다. 학생들은 서로 피드백하고 평가해주는 피어콜렉팅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낸다. 한 개척자가 길을 만들어 하나의 해법을 주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허허벌판에서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창의적으로 찾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입학 후 교육과정에 대해 말해 달라.

입학시험을 통과하면 21단계 훈련 과정에 들어간다. 42단계였던 것을 지난해 교장에 취임하면서 줄였다. 우수한 학생은 1년 반 만에, 어떤 학생은 5년 만에 과정을 마치기도 한다. 평균적으로 3년이다. 21단계를 마치는 것도 의무는 아니다. 21단계는 엄청 높은 수준이기 때문에 10단계만 마쳐도 기업에서 요구하는 요건을 갖출 수 있다. 취업이나 창업이 가능하다. 단계도 계단식으로 한단계씩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니라 제로에서 방사형으로 펴져 나가는 방식으로 다양한 형태를 띤다.

■특별한 입학자격이 없다.

초기에는 18~30세로 나이를 제한했는데 지난해 폐지했다. 예전에는 20~25세에 고등학교나 대학을 마치고 취업해 1~2개의 직업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를 마치고 취업했다가도 다시 배우고 다른 직업, 직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입학할 수 있도록 했다.

■에꼴42의 규모는 어떻게 되나.

프랑스 에꼴42에서 훈련받은 학생 수는 3800명이고 에꼴42와 협력을 맺은 캠퍼스를 통해 전세계적으로 7000명을 배출했다. 2020년까지 15개 국가에서 21개의 캠퍼스에서 1만명, 2021년까지 1만5000명으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성과를 소개한다면.

졸업생들이 100% 취업했다. 중요한 점은 그 중 35% 학생이 고등학교 졸업장 등 학위나 자격증이 없다는 것이다. 경제적 상황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기회를 준 덕분이다. 또 이라크 등 69개국 출신 학생들이 참가했다. 다양성이라는 점도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보다 많은 나라 학생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

■에꼴42 학습법을 기업에도 적용할 수 있나.

우리의 학습법은 협업으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그 아이디어를 동료 간 평가하면서 좋은 해결책이나 상품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에서는 이미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한국의 삼성도 이런 방식으로 세계적인 휴대폰을 만들었다.

■여성의 참여를 강조하는데.

IT은 고소득에 안정적인 직업인데 현재는 남성중심이다. 2020년까지 유럽에는 70만명의 디지털 분야 인력이 부족한데 그 만큼 여성의 참여가 중요하다. 여성의 참여로 프로그램 언어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것이 중요하다. 터키어에는 여성, 남성이 없는데 요리사는 여성, 의사는 남성이라는 편견이 프로그램 언어에도 적용된다. 단적인 예로 안면인식 프로그램의 경우 흑인은 잘 인식되지 않는다. 흑인 프로그래머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류의 절반인 여성이 IT산업에 뛰어드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도 '이노베이션 아카데미'가 개교를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도 에꼴42가 적용되는 것을 보고 싶다. 에꼴42 스터디맵을 두개의 원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안쪽의 원은 모든 나라가 같다. 하지만 바깥 원은 각 나라마다 달라진다. 입학과정인 '피씬'은 수영장이란 뜻인데 수영장에 아이를 빠뜨리면 스스로의 생존의지로 헤엄쳐 나오는 것에 착안했다. 이 수업과정을 성실하고 예의바른 나라인 한국에서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성과를 낼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성과가 나면 에꼴42 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공유할 수 있는 인류의 자산이 된다.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공공에서 준비하고 있다.

공공에서 한다고 민간에서 하는 것이랑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에꼴42 '파리'는 민간기업이, '리옹'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기업과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기업은 재정적으로 풍족하고 취업에도 효율적이다. 정부나 공공이 참여하면 안정적이고 바른 길로 갈 수 있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다.

■에꼴42가 개교 7년차다. 앞으로의 고민과 과제는.

먼저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것이고 두번째 교육법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이 평등하고 안정적으로 학교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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