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 추락 여객기 러 격추설 커져

2024-12-27 13:00:02 게재

미국 당국자 “러 방공망에 격추 징후” … 러시아 “가설 세우면 안돼”

25일 카자흐스탄 악타우시 인근 아제르바이잔항공 여객기 추락 현장에서 응급사태 전문가들이 드론을 이용해 작업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5일(현지시간) 카자흐스탄에서 추락해 수십 명의 사상자를 낸 아제르바이잔 여객기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사고 직후 제기됐던 새 떼에 의한 충돌 가능성은 약해지고 러시아에 의한 격추 가능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26일 익명을 요구한 미 당국자를 인용해 “초기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의 방공망이 아제르바이잔 항공기를 공격했다는 징후들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 당국자는 해당 정보가 사실로 드러나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무모함을 강조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해당 여객기가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드론을 격추하던 지역으로 비행경로를 변경했고, 비행기 꼬리 부분의 구멍들이 미사일 공격 혹은 방공시스템 작동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는 항공 전문가의 의견 등으로 미뤄 러시아군의 오인 격추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또 유로뉴스 등에 따르면 복수의 아제르바이잔 정부 소식통은 사고 여객기가 러시아의 방공시스템에 격추된 것이라고 밝혔다. 유로뉴스가 취재한 소식통은 러시아 그로즈니 상공에서 드론을 격추하기 위해 발사된 미사일이 여객기 근처에서 폭발하며 파편이 승객과 승무원을 강타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또 여객기 기장이 러시아 공항에 비상착륙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고 대신 카스피해를 건너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로 이동할 것을 지시받았다고 말했다.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출발해 러시아 그로즈니로 향하던 이 여객기가 왜 갑자기 항로를 이탈해 카스피해를 가로질러 반대쪽까지 날아가 비상착륙 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진술이다.

우크라이나 국가안보 당국자 안드리 코발렌코는 여객기 일부와 내부 구명조끼 등에 난 구멍을 근거로 러시아 방공시스템에 의해 격추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고, 전문가들도 사고 여객기 꼬리 부분에 구멍이 여럿 난 것을 들어 미사일이나 방공시스템 작동의 결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추락 당시 여객기는 악타우로 하강하기 전 위험할 정도로 가파른 속도로 하강하는 모습이 포착됐으며 이 여객기가 지나던 러시아 북캅카스 상공은 최근 몇 주간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의 표적이 됐던 지역이다.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간밤 우크라이나 드론 59대를 격추했다고 밝혔는데, 여객기 추락 불과 3시간 전에도 우크라이나 드론 1대가 그로즈니 서쪽 블라디캅카스 상공에서 격추됐다.

이런 관측에 대해 러시아는 섣부른 추측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현재 추락사고의 원인을 조사 중이며 결론이 나오기 전에 가설을 세우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내부에서도 격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여객기 꼬리 부분에 많은 구멍이 뚫린 점에 주목하며 “사고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비행기 외부 또는 내부 폭발 뒤 파편에 의한 손상일 수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코메르산트는 “생존자들은 여러 차례 폭발음을 들었고 숨쉬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일부 목격자는 여객기 바닥 아래 틈새에 있는 산소통이 폭발했을 수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얽힌 이 문제에 대해 카자흐스탄과 아제르바이잔 정부 당국자들은 신중한 입장이다.

카자흐스탄 상원의장 마울렌 아심바예프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아제르바이잔은 사고 정보를 숨길 의도가 전혀 없고 모든 정보를 공개하겠다”며 ‘성급한 결론’을 자제해 달라고 촉구했다고 타스 통신이 보도했다.

한편 25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를 출발해 러시아 그로즈니로 가던 아제르바이잔 항공 여객기가 카자흐스탄 서부 악타우시 인근에서 추락해 탑승자 67명 가운데 38명이 숨졌다. 여객기에는 아제르바이잔인 37명, 러시아인 16명, 카자흐스탄인 6명, 키르기스스탄 3명 등 67명이 타고 있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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