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조서 증거능력 제한 즉시 시행 "검찰만 불편"
천주현 변호사 "피고인에겐 문제없어" 지적
임은정 "내가 검찰조사 때 한 말, 조서에 없어"
김정철 변호사 "구속기간 내 공판심리 불가능 우려"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검찰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한 개정 형사소송법을 즉시시행해도 문제없다는 입장을 밝힌 가운데, 임은정 울산지검 부장검사는 지난달 30일 "검찰조사를 받으면서 일부 검사 이름을 언급했는데 열람해 보니 조서에 없었다"며 검찰 조서 관행을 비판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지난달 31일 "검찰 조서는 100퍼센트 영상녹화를 병행하지 않는 한 늘 문제가 있다"며 "개정 형소법을 당장 시행해도 검찰만 불편할 뿐, 피고인과 변호인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이 '도화선' = 개정 형소법은 검찰조서 증거능력을 경찰조서와 같은 수준으로 제한한다. 즉 법정에서 피고인이 조서 내용을 부인하면 유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로 쓸 수 없다.
기존 검찰 조서는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할 경우에도 성립의 진정 등 요건이 충족되면 증거로 쓸 수 있었는데, 자백을 위한 강압·회유 수사 관행 등이 문제되면서 경찰조서와 같은 수준으로 증거능력을 제한하게 됐다. 지난 1월 국회를 통과한 형소법 개정안은 8월부터 시행될 예정인데, 검찰 조서 증거능력을 제한한 312조는 4년 이내로 시행을 유예할 수 있다는 단서가 달렸다.
그러나, 최근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으로 개정 형소법 유예기간 단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뉴스타파 등 보도를 통해, 한 전 총리 사건 증인이었던 고 한만호씨의 비망록에서 검찰의 강압·회유 수사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검찰의 과거 수사관행에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이해한다"며 재조사 필요성에 공감했다.
최근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 4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주재한 '국민을 위한 수사권 개혁 후속 추진단' 전문위원 회의에서 법원 전문위원은 검찰 조서의 증거능력에 관한 개정법을 즉시 시행해도 실무상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내 말들 잘려져 조서에 들어가" = 임 검사는 안태근 전 검사장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을 때 "안 전 검사장 성추행 사실을 A검사장에게 말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조서를 열람해 보니 A검사장 이름이 빠져 있었다. 임 검사는 "서울남부지검 성폭력 은폐 의혹 사건으로 서울중앙지검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으며 B·C차장 이름을 일부러 언급했지만, 당연히 조서에 안 남았다"고 밝혔다. 임 검사는 "현행법이 검사 작성 조서를 경찰 작성 조서보다 더 믿어주는 것은 공익의 대변자이자 인권옹호기관으로서의 객관의무 있는 검사가 법적 의무를 성실히 이행함을 전제로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찰이 의무 이행에 게으르다면, 의무 이행을 전제로 주권자 국민이 검찰에게 부여한 권한을 마땅히 내려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 노련한 신문기술 필요해" = 법조계는 이에 대해 찬반이 갈리고 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1일 "검찰이 불편해지겠지만, 피고인에게는 불리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대부분 사건은 양형 때문에 혐의가 확실한 경우 (조서에 대한) 증거동의를 한다"며 "5~10퍼센트 정도의 강력히 혐의를 부인하는 경우만 조서 내용을 부인할 것이기 때문에 (재판지연에) 큰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천 변호사는 검찰 조서 증거능력 제한이 결과적으로 공판검사의 자질을 향상시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피고인 신문을 법정에서 제3자인 법관이 참관하는 가운데 자백을 유도해내야 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한 상당히 노련한 신문 기술이 필요해 공판검사들도 자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철 변호사(성균관대학교 로스쿨 겸임교수)는 보완입법 없이 개정 형소법을 즉시 시행하는 것에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는 "현재는 피고인신문이 형해화되어 (법정에서) 생략하나, 피고인신문이 필수가 돼 공판기일이 검사 피고인신문진행으로 매우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속기간 내 공판심리가 불가능해 대부분 6개월이 경과되면 석방 후 재판하게 돼 도주우려나 의도적 재판 불출석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