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법사위 폐기법안 91건 살펴보니

체계·자구심사 상관없이 폐기된 법안만 43개

2020-06-09 11:18:22 게재

'위원장 대안' 49개, 폐지로 민주당서 발의한 법안 많아

이해충돌·정부반대도 원인

"법사위 전면개혁 불가피"

20대 국회에서 법사위에 올라온 타상임위 법안 중 폐기된 게 91건이었고 이중 체계 자구심사 과정에서 붙잡힌 경우도 있었지만 아예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거나 소위로 넘어가지 않은 채 사라진 법안도 적지 않았다.

폐기된 법안 중에는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게 미래통합당 의원 발의 법률안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20대 국회에서는 법사위원장이 전반기엔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후반기엔 야당인 자유한국당 소속이었다.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은 현재 미래통합당의 전신으로 당시 더불어민주당에 이어 원내 제 2당이었다.


9일 내일신문이 국회 사무처로부터 받은 정보공개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 중 법사위에서 계류돼 폐기된 법안은 모두 91개였고 제2법안소위에서 체계 자구 심사를 이유로 계류돼 폐기절차를 밟은 게 48개였다. 절반 가까운 법안이 체계·자구 심사와 상관없이 폐기처리됐다는 얘기다.

상임위에서 통과된 후 아예 법사위 전체회의에 올라가지도 못한 미상정법안이 19개에 달했다. 전체회의에 올라오긴 했으나 체계자구 심사를 위한 제2 법안소위에 넘기지 않은 게 24건이었다. 43건 법안이 체계 자구심사와는 별도로 20대 국회의원들의 임기종료와 함께 폐기된 셈이다.

◆많은 의원의 법안이 병합된 대안법안마저 폐기 = 폐기된 법안 중엔 여러 법안을 병합한 '위원장 대안'이 대거 포함돼 있어 실제 폐기된 법안은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안 법안'에 포함된 의원발의 법안은 '대안발의 폐기'로 처리돼 '법률안 반영 법안'에 들어간다.


타상임위에서 통과돼 올라왔는데도 법사위에서 계류돼 폐기된 법안 중 '대안 법안'은 49개로 절반을 넘었다. 체계·자구 심사를 담당하는 2소위에 계류된 것이 28개에 달했고 전체회의에서 소위로 내려가지 못하고 계류된 대안법안이 24개,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못한 대안법안이 10개였다.

법사위에서 잡혀 폐기된 정부 입법안은 1개다. 의원발의 법안 41개 중에서는 19개가 2소위에서 잡혔고 13개는 전체회의에 계류되다 폐기됐다. 9개가 전체회의 미상정 법안이었다.

법사위원장의 소속 정당이었던 새누리당, 자유한국당 소속 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에서는 10개만 폐기된 반면 민주당 소속 의원이 발의한 법안 중에서는 22개가 폐기법안에 올랐다. 민주당 의원 발의 법안이 두 배 이상 많았다.

거대양당이 아닌 정당이나 무소속 의원이 낸 법안 중에서 폐기된 것은 9개였으며 이중 보수진영인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 소속 법안이 1개였으며 나머지 8개는 진보진영으로 분류되는 의원들이 낸 법안이었다. 법사위 폐기법안 중 유난히 진보진영 의원들이 낸 법안이 많았던 셈이다. 여당인 민주당의 주요 법안이 법사위원장 소속 정당인 야당에 의해 붙잡혔다는 비판의 근거다.

◆법사위서 정부 의견 반영도 월권 = 이같은 현상들은 법사위 운영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이뤄져 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체계 자구 심사를 이유로 붙잡아놓고 폐기시키는 '권한 남용'도 적지 않지만 법사위원장 등의 권한으로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인데도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하지 않거나 상정했더라도 소위로 보내지 않고 계류시켜 사실상 상임위를 무력화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일부 법안은 예산과 조세를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등 정부 부처와의 이견으로 법사위에 머물렀다 폐기된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해당사자들의 압박에 의해 처리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상임위 심사과정에서 조율되지 않은 부처의 의견이나 이해당사자의 이견은 법사위에서 다룰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이또한 '법사위 월권'으로 해석된다.

법사위를 '상원' 역할이 아닌 다른 상임위와 같은 일반 상임위로 위상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였던 송기헌 의원은 "법사위가 상원 역할이 아닌 여러 상임위 중 하나로서의 역할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법사위 전반을 개혁해야 한다"면서 "법사위에 있는 체계자구 심사를 각 상임위에 이관하고 이해상충문제나 정부와의 이견은 상임위 심사때 숙고하고 조정하도록 보완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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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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