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응세 한국한의약진흥원장

"공급자 아닌 국민이 치료 결정권 가져야"

2020-07-02 10:55:42 게재

세계전통의학시장 185조원, 국가 신성장 동력

수출위해 표준화작업 시급, 양방과 신약개발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6월 29일 이응세(58) 한국한의약진흥원장 인터뷰 당시 보건복지부가 한방 첩약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지원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추진하면서 이해관계자들의 신경전이 팽팽했다. 이 원장은 “공급자가 인위적으로 치료의 방법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수요자인 국민이 치료에 대한 결정권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며 에둘러 표현했지만 필요성에 대한 의지가 읽혀졌다. 이 원장과의 인터뷰는 6월 29일 서울 중구 퇴계로에 있는 한국한의약진흥원(진흥원) 서울 정책본부에서 이뤄졌다.
이응세 한국한의약진흥원장│△보건복지부 한의약혁신 R&D 발전위원회 위원(2018년 8월 ∼ 현재) △한약진흥재단 원장(2017년 11월 ∼ 2019년 6월) △러시아 태평양국립의과대학교 정교수(2017년 1월 ∼ 2017년 11월) △유라시아의학센터장(2014년 4월 ∼ 2017년 11월) △국제동양의학회 사무총장(2003년 10월 ∼ 2018년 11월) △제16대 대통령 자문의(2003년 2월 ∼ 2008년 2월) △상지대학교 부속한방병원 부원장(1995년 5월 ∼ 1997년 4월)

■ 첩약 급여화를 둘러싼 현장의 갈등이 첨예하다.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보일수도 있다.

국가승인통계인 ‘2017년 한방의료이용 및 한약소비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약을 복용하고 싶은데(78.9%), 한약 값이 비싸서(44.3%) 복용을 꺼린다’는 게 국민들의 생각이었다. 첩약 급여화는 국민들이 한약치료를 이용할 수 있는 문턱을 낮추기 위한 것이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첩약 급여화에 따라 질환별로 자주 사용하는(다빈도) 처방에 대한 위해물질 모니터링과 독성평가를 통해 안전성을 과학적으로 검증,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한약 생산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탕약현대화사업과 한약비임상시험센터를 운영 중이다.

한의 진료의 근거를 강화해 신뢰도를 높이고 보장성을 확대하기 위해 30개 질환에 대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도 개발한다. 고혈압, 치매, 알레르기성 비염 같은 30개 질환의 근거중심 연구와 임상실험을 시행해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한의사에게 표준화된 치료방법을 제시하는 사업이다.

■ 의약수준을 높이기 위해 한의약의 과학화, 균질화 등을 추진하지만 일각에서는 한의계 편익을 위한 조치라는 시선이 있다.

치료에서 제일 중요한 건 국민이 결정권을 갖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치료를 받고 어떤 게 더 편한지 등을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반드시 한의학일 필요도, 양의학일 이유도 없다. 선택은 국민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의료정보의 우위가 국민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 그동안 공급자 위주로 의료시스템이 이뤄진 측면이 있다. 한의학 혹은 양의학 등이 살아남고 안 살아남고는 소비자가 얼마나 이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전통의학 육성은 국가 차원에서 경제적으로 이득이기도 하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 업체인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GIA)’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전통의학시장 규모는 약 185조원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통의학시장 규모가 급속도로 발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의학 제약 의료기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해외 수출이 이뤄질 수 있다. 이러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 전통의학 시장에서 한국 한의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중의약에 비해 낮은 인지도와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 미비, 한의약 산업 규모화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결국 한의약의 해외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의약과 차별화된 한의약의 정체성 확립, 세계인과 공유할 수 있는 한의약 콘텐츠와 서비스, 그리고 혁신적인 한의약 개발과 각국 의료 환경과 문화에 최적화된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

한의약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국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각국이 전통의약 세계시장에서 경쟁을 펼치는 가운데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가 과학화와 표준화다. 우리 기관은 한약재 소재 발굴, 다양한 제형의 한의약 개발, 한의표준임상진료지침 개발과 임상시험 등을 통해 한약의 치료 원리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표준화하고 있다. 한의약의 과학화, 표준화 사업을 통해 나온 성과들을 해외 전문가들과 일반인들에게 알리며 우수한 한의 기술과 제품들이 해외에 나갈 수 있도록 세계 각국의 정보 제공과 기업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 한의약의 과학화, 표준화 속도가 생각보다 빠르지 않다.

서양 의학에서 주로 처방하는 화학 합성 약품과 달리 한의약은 한 가지 약물이라고 해도 수천, 수만 성분이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그 기전을 온전히 예측하고 밝히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장 함유량이 높은 물질을 기준으로 연구하고 기전을 설명해야 한다. 대신 수천 년 동안 생활 속에서 사용해온 임상경험과 이것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고문헌을 현대 과학으로 검증해나가고 있다.



진흥원에서는 한의약의 과학화, 표준화를 통해 신뢰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원료인 한약재 표준화를 비롯해 한약 제제의 표준화와 현대화,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인 표준임상진료지침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11월에는 한약에 대한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지원하고 표준화·과학화를 통한 한의약 산업 활성화의 기반이 될 한약제제생산센터(GMP)와 한약비임상시험센터(GLP) 등 첨단 연구 인프라를 구축했다.

또한 한약제제현대화(약효표준화) 사업을 통해 한약제제의 주요 흡수성분의 혈중 약물거동을 조사하여 의약품으로서 한약제제의 과학적 근거를 입증하고 있다. 다빈도 한약제제 주요 성분 15품목에 대한 약동학(★) 정보를 확보했다. 또한 한약제제 사용 확대를 위해 한약과 양약을 실험동물에 병용투여 했을 때의 약동학적 흡수변화를 추적, 182건을 모니터링한 결과 150여건은 크게 변화가 없었으나 30여건이 약물 흡수에 영향을 줄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는 올해부터 신규로 시작하는 한의약혁신기술개발사업(약물상호작용 임상연구)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 중국산 ‘이엽우피소’가 백수오로 둔갑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한약재에 대한 신뢰도 확보가 중요하다.

우수 한약 확보는 의약품 수준의 균일하고 뛰어난 품질과 농약 및 중금속으로부터 안전하며 이력관리 등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제공에서부터 출발한다. 진흥원에서는 의약품용 표준 품종을 개발하는 한편, 양질의 한약재가 생산될 수 있도록 표준재배와 생산지침을 마련하는 등 한약재 생산 기반을 조성 중이다. 특히 약용작물종자보급센터는 기원이 확실하고 발아율이 높은 종자를 전국 한약재 재배 농가에 보급해 재배관리 교육과 컨설팅을 하고 있다. 또한 전국 5개(평창 안동 진안 화순 제천)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 중인 한약재유통지원시설의 활성화를 위한 협의체를 꾸려 한약재 생산과 유통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 양방과 한방의 융합이 중요한 시점이다. 국립암센터와 양한방 융합연구를 하고 있는데, 연구 진척 상황은.

2018년부터 국립암센터와 한의약 소재로부터 새로운 항암소재를 개발하는 중이다. 한의약소재 및 한의약소재 유래 천연물의 항암작용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한·양방 협력의 모범사례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협업을 통해 여러 암 관련 기전에서 효능을 갖는 후보물질을 선별하고 표적암치료제로서의 가능성을 안전성 평가와 함께 검토해왔다. 그 결과, 후보물질 940종 가운데 항암효능을 갖는 유효소재 26종을 발굴했다.

국립암센터와 양한방 융합연구 외에도 삶의 질 개선 관점에서 새로운 한의약 개발도 추진 중이다. 한약재들의 새로운 조합을 통해 항혈전(★) 및 여성갱년기에 효과가 있는 한의약 소재를 개발해 국내 제약회사에 기술이전, 새로운 한약제제를 제품화하고 있다. 또한 진흥원 한의약소재은행이 보유한 단일 천연물 1500여종과 한약재 발효소재 8000여종을 이용해 중국중의과학원(★)과 코로나19 감염 및 예방을 위한 한의약 개발을 추진 중이다.

★용어설명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 = 보건복지부는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등 3개 질환을 대상으로 첩약 건강보험 시범사업을 10월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3일 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소위에서 논의, 7월말 건정심 본회의에 상정해 최종 결정한다. 연간 500억원 이내의 재정이 투입, 3년간 실시한다. 1년에 10일분 첩약 한제에 대해 절반은 환자가 나머지 절반은 건강보험에서 비용을 부담한다. 첩약은 여러 가지 다른 한약 제제를 섞어 탕약으로 만든 약이다.

약동학 = 생체에 투여한 약물이 체내 인자들에 의해 어떻게 움직이고 변화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항혈전 =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혈소판의 작용을 억제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동맥 혈전성 질환 치료를 목적으로 한다.

중국중의과학원 = 1955년 설립, 중의학 분야 종합 연구기관이다. 2015년 중국중의과학원 소속 투유유 교수가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기도 했다. 투유유 교수는 중의학과 현대의학을 접목해 약초 '개똥쑥'에서 항말라리아제 성분인 아르테미시닌을 발견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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