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판사도 노무사도 "입법 실수 맞다"
비건설업체 발주공사 '안전사각지대' … 고용부 "문제는 시행후에 보완하면 돼"
그동안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보호를 받던 제조업체 등의 유지보수작업(설치·해체작업 등 포함) 하청노동자가 법적보호 사각지대로 내몰렸다는 본지 지적(2020년 7월 6일자 1면, 20면 기사 참고)에 대해 수도권 지역 한 부장판사는 "정확한 판단"이라고 확인했다. 산업안전보건법에 정통한 법학박사인 공인노무사 A씨도 "건설공사 발주자는 시행사로 봐야 한다"며 '큰 구멍이 뚫렸다'는 본지 지적에 동의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는 "법을 시행하며 문제가 드러나면 보완입법을 하면 된다"며 문제 지적을 수용하지 않았다. 본지는 정부발의로 2018년 12월 개정된 산안법 제2조에 도급인 정의를 신설하며 '건설공사 발주자는 제외한다'는 단서조항을 포함시켜, 기존 법의 보호를 받던 제조업체 등의 유지보수업무 하청노동자가 사각지대로 내몰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산안법상 도급인의 의무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강한 반면, 건설공사 발주자의 의무는 실효성이 없는 서류 작성·확인에 그치고, 그마저도 50억원 이하 건설공사는 적용되지 않는다.
앞의 수도권 한 부장판사는 최근 기자와 만나 "건설공사 발주자를 어떻게 보느냐가 쟁점"이라며 "산안법 정의에서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라는 규정은 말 그대로 해석하면 비건설업체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시공을 주도하고 관리'하는 게 건설업체이기 때문에 비건설업체가 건설공사 발주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결국 비건설업체가 발주하는 50억원 이하 공사는 도급인의 의무에서도, 건설공사 발주자의 의무에서도 제외된다는 지적이 맞다는 것이다.
공인노무사 A씨도 "'건설공사 시공을 주도해 총괄관리하지 않는 자'는 시행사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이들이 발주하는 공사가 도급인의 의무를 적용받지 않고 건설공사 발주자의무를 적용받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실제 기업현장에서 이 같은 혼선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9일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는 "현장에서 '우리는 공사 발주만 했고, 시공주도나 총괄관리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도급인의 의무에서 빠져나가려는 경우가 있어,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지침을 내려 철저히 감독하라고 한 바 있다"며 "법을 시행하다가 문제가 확인되면 보완입법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문제는 고용부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법치행정이 아닌 자의적 행정을 하려고 한다는 점"이라며 "잘못된 법은 그대로 놔두고 지침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자세이고 현장 혼란과 정부 불신을 조장할 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