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박한 산재위험 있어도 ‘작업중지명령’ 못한다
‘시정조치명령’ 전제조건 명시, 사실상 무력화
대상과 요건도 크게 축소, ‘본질 훼손’ 비판
아무리 급박한 산업재해 발생위험이 있더라도 고용노동부장관이 작업중지명령을 내릴 수 없게 됐다. 전부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이 이전에는 없던 작업중지명령의 전제조건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산안법 제53조제3항은 ‘고용부장관은 사업주가 (중략) 시정조치명령을 이행하지 아니하여 위험상태가 해소되지 않거나 유해위험이 현저히 높아질 우려가 있는 경우, 작업중지를 명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시정조치명령이 작업중지명령의 전제조건이 된 것이다. 작업중지명령은 급박한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내려지는 특성상, 행정기관의 사전 시정조치명령 없이도 할 수 있어야 함에도 개정법에서는 그럴 수 없게 됐다.
예를 들면 어느 사업장의 설비에 방호장치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산재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것을 발견하면 개정 전에는 해당 설비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발견 전에 시정조치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으면 작업중지명령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다양한 상황에서 여러 형태로 명하는 시정조치명령과 급박한 상황에서 명하는 작업중지명령의 취지와 특성을 몰각한 역진적 개정”이라며 “중대재해발생시 작업중지명령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만 집중하다가 멀쩡한 작업중지명령 대상이 대폭 축소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작업중지명령뿐만 아니라 시정조치명령의 요건과 대상도 크게 축소됐다. 전부개정 산안법 제53조제1항은 시정조치명령 요건으로 ‘법령상의 조치를 하지 않아 근로자에게 현저한 유해·위험이 초래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를 명시했다. 예전의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와 비교해 요건이 크게 축소됐다. 문제는 법령상의 조치가 시정조치명령의 전제조건이 돼, 일부 법적 사항이 아니면 시정조치명령을 할 수 없게 돼 본 명령제도의 본질이 훼손되었다는 점이다. 예컨대 신규도입된 기계에 취급요령이 부착돼 있지 않은 경우, 이것이 법적 사항이 아니면 안전을 위해 아무리 필요해도 시정조치명령을 할 수 없다.
시정조치명령 대상도 종전에는 제한이 없었으나, 현재는 고용부령으로 정하는 7가지 조치로 축소됐다. 정진우 교수는 “법령위반인데도 7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미선임 등에 대해 예전에는 시정조치명령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 한 관계자는 “불명확한 규정을 명확히 하는 차원에서 축소시켰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