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부실한 산업재해조사 방치
"현장 가장 잘 아는 노동자 참여 필수"
미국·독일·영국 등 노동자대표 참여 의무화
"산업재해조사표에는 사고원인의 70%가 '작업자 부주의' 한 줄로 기재돼 있다." 화섬식품노조 현재순 노동안전보건실장이 지난 5월 '매일노동뉴스' 주최 집담회에서 한 말이다. 산업재해조사표란 산업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기업이 작성해 고용노동부에 제출하는 공식문서인데, 매우 부실하게 작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업에서 산업재해조사표의 기재내용을 부실하게 작성·제출하더라도 고용부는 이에 대해 시정·보완조치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 등의 지적이다.
2018년 9월 발표된 개혁위원회 보고서는 "산업재해통계의 경우, 보고통계의 기초가 되는 산업재해조사표의 기재내용(재해발생개요, 재해발생원인 등)에 부실한 사례가 다수 발견된다"며 "산업재해조사표가 정확하고 상세하게 작성되어 통계로서의 활용성을 제고할 수 있도록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할 것"을 고용부에 권고했다. 하지만 고용부에 확인한 결과, 개혁위원회에서 산업재해조사표의 내실화 대책을 수립하라고 권고한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노동자나 노동자대표가 재해조사에 참여하지 못해 정확한 원인규명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여전히 시정되지 않고 있다. 앞의 개혁위원회 보고서는 "(산업안전감독관)집무규정에 의하면, 감독 시에는 근로자대표나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참여시켜 사업장 유해위험요인이나 법령위반사항 및 개선대책 등을 설명하도록 하고 있으나, 재해조사 시에는 합리적 이유없이 이같은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고용노동부의 재해조사 시 근로자대표를 그 과정에 참여시킬 것"을 권고했다.
사실 사업장감독보다 재해조사 시 노동자대표의 참여 필요성이 더 크다. 산업재해는 다양한 원인이 복잡하게 관련돼 있는 경우가 많고, 사업주에 의해 조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대표를 재해조사에 참가토록 함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 심층적인 재해조사가 가능하다. 보고서에 의하면 독일, 미국, 영국 등 선진국은 노동자대표가 재해조사를 포함해 감독기관의 모든 형태의 감독과정에 참가하는 것이 노동자의 권리로 법령에 규정돼 있다. 뿐만 아니라 감독시 노동자대표 참여를 보장토록 한 규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은 근로자대표의 용어정의만 있을 뿐, 선출방법과 절차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약 10%에 그쳐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약 90%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선출방법과 절차가 없다보니 90%의 노동자들은 '근로자대표'를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없고, 있더라도 '감독 대비용'으로 급하게 정하는 경우가 많은 등 근로자대표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태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정진우 교수는 "근로자대표 제도의 유명무실과 산업재해조사표 제출의 부실 문제에 대한 개선의견이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는데 고용부는 이에 대해 관심과 의지가 없다"며 "산업재해로부터 배우기 어렵게 만드는 현재 구조를 방치한 상태로는 산업재해를 줄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