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안전보건법, 현장에서 작동 않는 이유 있다

2020-08-31 12:39:26 게재

법과 현장 연결하는 ‘기술상 지침’ 없어

고용부 직무유기, 공단은 엉뚱한 지침 남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산재예방을 위해 사업장에서 취해야 하는 각종 조치를 규정한 예방법이다. 하지만 법령의 특성상 일반적 내용이 적지 않아 개별사업장에서 법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게 법과 현장을 연결하는 ‘기술상 지침’이다. 산안법 제13조는 고용부장관에게 ‘기술상 지침(표준)’을 마련해 사업주에게 지도·권고하도록 규정했다.

그런데 고용부는 기술상 지침을 제정하거나 개정하는 활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에 지원업무를 위임했지만, 공단은 ‘기술상 지침’이 아닌 자체 지침(KOSHA Guide)을 만드는 엉뚱한 일만하고 있다. 법과 현장을 연결하는 가교가 없으니, 산안법이 현장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적폐청산을 위 해 출범한 고용노동행정개혁위원회(위원장 이병훈 중앙대 교수)는 2018년 9월 보고서에서 “산안법이 사업장에서 잘 준수되기 위해서는 법령과 현장의 가교 역할을 하는 고용노동부 차원의 지침, 가이드 등의 개발·보급이 활성화돼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 활동이 취약하고 그 내용 또한 법령과 부합하지 않는 등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위원회는 “산안법을 적용하기 위한 지침 등의 제·개정활동의 부재는 사업장에서 산안법의 실질적인 이행의 어려움을 초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일선현장에서 지방관서를 오로지 법위반을 적발해 처벌하는 기관인 것으로 잘못 생각하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며 개선을 권고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행정개혁위의 기술상 지침 정상화에 대한 권고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미이행에 대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한 건설안전컨설팅 회사 대표 ㄱ씨는 “기술상의 지침을 만들지 않는 것은 정부가 자신들의 존재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며 “정부는 사고가 터지면 처벌하는 데만 급급하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는 무관심하다”고 지적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 재해예방선진국은 기업들이 법령을 잘 준수하도록 고용부가 중심이 돼 다종다양한 기술상 지침을 개발해 기업을 대상으로 널리 홍보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고용부가 기술상의 지침을 제·개정하지 않고 손 놓고 있는 것은 산재예방의 인프라 조성이라는 정부의 기본적인 책무를 등한시하는 것이고,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전형적인 복지부동”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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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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