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위험정보에 노동자 접근권 보장
산안법 미비가 노사 간 장외 싸움 불러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노동자 유족들이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해 힘겨운 법정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측이 유해위험정보를 알려주지 않자, 고용부를 상대로 회사측이 고용부에 제출한 작업환경측정결과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벌이고 있다.
사법부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 대상이 아니라는 판단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런 법정다툼 배경에는 사업장 유해위험정보에 대한 노동자 또는 그 대표(대리인)의 접근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있는 산안법의 미비가 놓여있다.
독일과 미국 등은 모두 유해물질을 대상으로 노출·검진기록에 대한 장기간(약 30~40년) 기록유지의무를 부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노동자나 그 대표에게 해당 기록에 대한 충분한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독일은 위험성이 높고 그 회피를 위해 전문적 정보가 필요한 작업영역에서 노동자의 알권리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해위험물질 보호령'이 대표적이다. 특히 본 규칙 제14조는 유해위험물질 취급작업을 하는 노동자에게 유해위험에 관한 고도의 알권리를 다양하게 부여하고 있다. 또한 사업장의 유해위험정보는 사업장조직법 등에 의해 '종업원대표'가 독자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미국도 산업안전보건법에서 노동자 또는 그 대표가 작업장의 유해위험정보를 알 수 있도록 여러 방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노동자의 노출 및 검진기록에의 접근에 관한 규칙'은 사용자에게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노출기록과 검진기록에 대해 노동자 또는 그 대표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사업장에서는 재직하거나 퇴사한 노동자가 기업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못 받아 기업이 아닌 정부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하는 기이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서울과학기술대 정진우 교수는 "산안법에 근로자 또는 그 대표의 알권리가 미흡하게 규정돼 있어 노·사의 권리와 의무의 이슈가 장외로 나와 정보공개법의 틀에서 다루어지면서 소모적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산안법에 근로자 또는 그 대표의 알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