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 18

공무원은 봐주는 고용부의 '내로남불 산재예방행정'

2020-11-09 11:20:36 게재

이재갑 고용부장관, 공무원은 감독대상 아닌 줄로 잘못 알아

민간기업만 산안법 단속 … 우정본부·직업군인 등 감독 안해

"집배원 과로사, 죽음의 행렬 이제 멈출 때가 됐습니다. 장관님, 이거 노동부에서 특별근로감독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신창현 의원)

"집배원들 대부분 공무원이기 때문에 특별근로감독 대상으로 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지난 2019년 7월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회의록 중 일부다. 산재예방 주무부처인 고용부장관이 공무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적용 대상이 아닌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공무원)의 법 준수여부는 감독하지 않으면서 민간기업만 감독하는 것은 '내로남불' 산재예방행정으로 비판받고 있다.

집배원 과로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년전부터 노동조합의 대책마련 요구가 끊이질 않았지만 고용부 감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사진은 2017년 6월 전국우정노동조합이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과 집배원 과로사 근절, 인력증원, 집배업무부하량 폐기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장면이다. 사진 우정노조 홈페이지


◆고용부 "현업기관은 산안법 전부 적용" = 산업안전보건법 제2조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를 법 적용대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공무원이 근기법상 근로자인가'에 대해 대법원은 여러 차례 '그렇다'고 판단했다. 1996년 4월 23일 94다446판결에서 대법원(주심 정귀호 대법관)은 "공무원도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판단했다.

공무원 관련 법령에서 안전보건사항을 별도로 규정하고 있다면, 그 사항에 대해서는 산안법령이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관련규정이 없다면, 공무원도 당연히 산안법령이 적용된다.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 공무원 노동조건을 규정한 관련 법령은 안전보건사항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다. 따라서 공무원도 산안법이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고용부는 2001년 9월 산안법 설명 책자 1200부를 발행해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이렇게 적용됩니다'란 제목의 책자에 따르면 '국가기관과 지자체 중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본부 등과 같은 일반행정기관은 산안법 규정 일부만 적용되고, 국립병원이나 우체국 등과 같은 현업기관은 산안법 규정 전부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또 '일반행정기관에 적용되는 대표적 규정은 안전조치와 보건조치 등에 관한 사항'이라고 명시했다. 고용부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산안법 설명책자를 발행해 홍보했지만, 이같은 내용은 변하지 않았다.

현업기관인 우정사업본부의 우체국은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적용되는 사업장이므로, 현행법상 근로감독관의 산업안전보건분야 근로감독 대상에 당연히 포함된다.


◆집배원 사망 잇달아도 감독 안해 = 2019년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상수 수석전문위원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기준 우체국 집배원은 총 1만7458명이고, 이중 공무원은 1만3456명이다. 집배원은 장시간·고강도노동 등 열악한 노동환경에 따라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총 166명이 사망해 큰 사회문제가 됐다.

당연히 고용부는 집배원의 과중노동과 과로사문제 등에 대한 산업안전감독을 실시해야 한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에 따르면 집배원에게 많이 발생하는 과로사와 안전사고 등은 산안법 제4장에 규정된 '유해위험방지조치(위험성평가 포함)'만 제대로 실시하면 얼마든지 방지할 수 있다. 우정사업본부가 산안법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도록 예방지도점검하는 것과 더불어, 이것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감독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정 교수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도 정부기관이라고 해서 감독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법적 근거도 없거니와, 노동자보호의 관점에서 볼 때 산업안전보건법 집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군대, 산안법 적용 사각지대 = 2019년 12월 고용부가 발행한 '2018년 산업재해 현황분석' 책자에 따르면, 직업군인 산재 사망자는 49명, 부상 및 질병자는 286명에 달했다. 군대 내에 군무원이나 민간고용원의 산업재해 통계는 별도로 산출하지 않고 있다.

군인의 경우, 이들의 안전보건에 대해서는 별도의 법이 제정돼 있지 않다. 법령이 아닌 국방부 훈령에서 안전보건에 대한 아주 빈약하고 단편적인 규정을 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군대 내의 직업군인, 군무원 등에 대해서는 산안법 적용이 명백하다. 그럼에도 그간 고용부는 산안법에 규정된 안전보건조치, 산업재해 발생보고 등의 각종 규정을 집행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아 왔다. 그러다 보니 군대를 대상으로 산안법을 지도홍보하거나 예방점검, 재해조사감독 등도 실시하지 않고 있다. 결국 사병뿐만 아니라 군대 내에 있는 직업군인, 군무원도 산업안전보건법 보호의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정 교수는 "군대는 민간의 위험한 사업장 못지않게 위험한 시설과 위험물을 많이 취급하고 있고, 실제 사고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그런데도 노동자 신분인 직업군인, 군무원 등에 대해 산안법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연재기사]

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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