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장기획, 산재사고 왜 줄지 않나 - 19

"사다리작업지침 지킬수 있는 사업장 한 곳도 없어"

2020-11-16 11:45:16 게재

지킬 수 없는 비현실적 내용이 원인

지침 만들 때 현장·외국사례 조사 안해

고용부에 따르면 사다리는 지게차와 함께 노동자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최근 10년간 사다리 추락 사망자는 317명이고, 그중 이동식사다리 사고사망자는 267명에 달했다.

산재사망자 절반감축 목표를 세운 문재인정부의 고용노동부는 2019년 1월 1일부터 사다리에 올라가 작업하는 것을 전면금지했다. 사다리를 이동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위에서 작업하는 것은 안된다는 것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형사처벌 한다고 밝혔다.

산업현장에서는 난리가 났다. 탁상행정이란 비판이 쏟아졌다. 고용부는 2019년 3월18일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이번엔 '경작업'에 한해 A형사다리에서는 작업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대신 반드시 안전모를 쓰고, 2인1조로 안전대를 착용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현장에서는 여전히 비현실적인 조건이라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고용부는 A형 사다리에 한해 작업을 허용하며 안전모+2인1조+안전대 착용 등 비현실적 조건을 부여했다. 반면 영국 산업안전보건청은 사다리작업이 허용되는 경우를 그림으로 알기 쉽게 설명했다.


◆무리한 해석하려다 '난리' = 더 심각한 문제는 고용부의 사다리작업 허용조치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누구보다 법치주의에 입각하여야 할 행정기관이 법치행정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안전보건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24조는 사다리를 '통로'로 사용할 때의 기준을 규정하고 있다. 사다리에서의 '작업'은 금지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의 소지가 있었던 규정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다리작업 사망사고가 많이 발생하자 고용부가 충분한 검토 없이 사다리작업을 갑자기 금지하겠다고 나서며 난리가 난 것이다.

사다리작업이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이를 금지하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법적으로 무리한 해석이라는 점을 인정해 이를 허용하려면, 고용부는 법령인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을 개정해 반영하는 것이 정상적인 절차이다. 실행에 필요한 자세한 사항은 산안법에 따른 '기술상의 지침(기술표준)'으로 제정하면 된다.

하지만 고용부는 사다리작업을 금지한 법령은 지금까지 그대로 둔 채, 자체적인 지침을 발표해 사다리작업을 허용했다. 하지만 고용부가 법령을 무시하고 자의적으로 발표한 지침은 법규로서 효력을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법 집행의 실효성을 보장받기도 어렵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는 "법령 어디에도에도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내용을 가지고 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준수를 강요하는 것은, 그것도 형사처벌 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은 권한남용이자 법치행정의 원칙을 위반하는 처사이다. 형사처벌이 뒤따르는 중요한 사항은 인권보장을 위해서라도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래야 이행력도 확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자형은 안되고, A형만 허용 = 사다리작업을 허용한 지침의 내용도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것으로 지적됐다. 2019년 3월18일 고용부가 발표한 '이동식사다리 안전작업지침 개선방안'은 보통사다리(일자형 사다리)와 신축형 사다리는 이동통로로만 사용하고, 발붙임사다리(A형사다리)에서는 '경작업'에 한해 사용을 허용했다. 고용부는 '경작업은 손 또는 팔을 가볍게 사용하는 작업으로서 전구교체작업, 전기·통신작업, 평탄한 곳의 조경작업 등'이라고 덧붙였다.

고용부는 작업높이를 1.2m미만, 1.2m이상~2m미만, 2m이상~3.5m이하의 3가지로 구분하고 안전작업 지침을 명시했다. △1.2m미만은 반드시 안전모 착용 △1.2m이상~2m미만은 안전모+2인1조 작업 △2m이상~3.5m이하는 안전모+2인1조+안전대 착용을 의무화했다. 안전대란 추락예방을 위한 안전장치로 몸에 착용하는 안전벨트와 작업장 상부에 고정된 지지대, 이들을 연결하는 로프 등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공간적 특성상 A형 사다리를 사용할 수 없고 일자형 사다리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일자형 사다리에서는 경작업조차도 하지 말하는 것은 법을 다 위반하라는 이야기이나 마찬가지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건설현장 한 안전관계자는 "고용부의 사다리 작업지침을 지키고 있는, 아니 지킬 수 있는 사업장은 대한민국에서 단 한군데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 소재 한 다국적기업의 안전팀장도 "외국계 회사(미국)의 본사 안전총괄부서에서 고용부의 이동식사다리 안전작업지침을 보고 '한국 정부에서 나온 것 맞냐'고 하면서 '어떻게 이런 불합리한 내용의 지침이 중앙부처에서 나오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여러 나라에 현지법인이 있는데 이처럼 거친 규제를 하는 나라는 한국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고 꼬집었다.

◆사다리작업 금지 선진국 없어 = 미국 영국 일본 등 안전선진국은 사다리작업 자체를 무조건 금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자형사다리를 금지하지도 않는다.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의 '사다리작업기준(Safe use of ladders and stepladders)'은 '사다리는 보건안전법상 금지되지 않는다. 사실 그것들은 위험성이 낮고 단기간 작업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구체적으로 '사다리작업기준'은 그림을 그려 알기 쉽게 허용되는 경우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그림 참조) 선진국 어느 나라도 일자형 사다리에서의 작업을 금지하는 경우는 발견되지 않는다. A형 사다리에서의 작업 또한 이중삼중의 비현실적인 규제를 하고 있지는 않다.

정부는 사다리 작업지침을 제정할 때 응당 거쳐야 할 외국사례 파악과 현장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현장에서 지킬 수 없는 현실과 괴리된 지침이 될 것은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고용부 한 관계자는 "이동식사다리 안전작업지침의 내용을 이해관계자 등 간담회를 통해 안전보건규칙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침 시행 1년 8년개월이 지나, 본지가 취재를 하자 그제서야 법령개정 의사를 밝힌 것이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정진우 교수는 "규제가 비현실적이면 이행으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며 "행정기관에게 규제의 현장작동성이 생명처럼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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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호 한남진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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