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물 만드는 사람들│이성교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수계조절 주무관

"100년 넘은 직업, 이제 빛 보네요"

2020-12-28 12:05:39 게재

혈관같은 수도관 조절

연간 100일 이상 야근

"1년에 100일 이상은 야근하는 것 같아요. 통상 도로 굴착공사 관련이에요. '누수'라고 하면 자다가도 뛰어나가죠."

이성교(사진) 서울시 상수도사업본부 수계조절 담당 주무관은 "신혼때도 25일 밤샘을 했고 지방에 가려고 김포공항에 갔다가 돌아온 적도 한두번이 아니다"며 "그래도 야간작업을 할 때는 물이 안나온다고 불평하는 시민보다 '고생한다'는 응원이 많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를 할 때나 사고가 나면 단수를 해야 하거든요. 이때 주민들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도 업무에 속해요. 공사구간을 사전에 홍보해도 어려움은 있죠."

'수계조절'은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100년 넘은 직업군이다. 제수밸브를 조절, 정수센터와 중간 공급지인 배수지 등에서 연결되는 공급관로를 바꾸는 업무다. 1908년 뚝도정수장에서 대한제국 황실까지 수돗물이 공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수계조절 역사만 112년인 셈이다.

서울시는 자치구마다 1명씩 전담요원을 배치, 안정적으로 수돗물이 공급되도록 하고 있다. 이 주무관을 비롯해 남부수도사업소에 소속된 수계조절 담당 8명은 관악 금천 영등포 동작 4개 자치구 공급관로를 책임지고 있다.

1997년 서울시에 입사한 그에게도 당시 수계조절은 낯선 업무였다. 기계를 전공했던지라 차량정비 업무를 맡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1998년부터 수계 업무에 투입, 초·중·고교 시절을 보낸 관악구를 담당하고 있다. 이성교 주무관은 "공동 수도며 어머니 손잡고 물 길러 다니던 기억이 선하다"며 "초등학교에 입학할 즈음 수도관을 놓기 시작했는데 지금 그동네 물 공급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맨홀에 물을 제어하는 장치인 제수밸브가 연결돼있는데 자치구별로 약 1만개입니다. 남부수도사업소에서 관리하는 것만 4만4000개예요."

지형을 비롯해 주요 밸브를 숙지하는 데만 5년이 걸린다. 도제(徒弟)방식으로 업무를 익힐 수밖에 없다. 1936년생인 그의 '사수(師授)의 사수'에게도 사수가 있었고 지금 그 역시 72세와 62세 된 선배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주무관은 "서울 도심 지하에 묻힌 수도관은 우리 몸 속에 있는 혈관처럼 복잡하게 얽혀있고 각종 공사가 수시로 진행된다"며 "제수밸브를 잘못 조절해 물 흐름이 바뀌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천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녹물사고'가 바로 수계조절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1969년생인 그가 여전히 '막내'다. 업무는 복잡한데 전문분야라는 인식이 적다. 서울시도 직전까지만 해도 7년이 되면 다른 업무를 맡겼다. 다행히 정부에서 관련 자격증을 신설할 예정이다. 이성교 주무관은 "그간 '인력 대물림'으로 유지해왔는데 이제 와서 빛을 보는 것 같다"며 "시민들 작은 요구라도 신속히 대응, 수돗물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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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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