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넘어 주민자치 시대로 | ⑦경기 오산시 고현마을학교

지자체·학교·주민이 손잡고 마을공동체 복원

2021-04-07 12:55:10 게재

고현초교 통학구역 3개 마을

활동가 12명, 마을강사 52명

돌봄·교육·이웃축제 등 진행

지난해 12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통과로 지방자치가 한 단계 성장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무엇보다 지방자치의 주인인 '주민참여'가 강화된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순은 대통령소속 자치분권위원회 위원장은 "그동안 지방자치 주체는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 머물렀다는 게 아쉬운 점"이라며 "전부개정안의 핵심은 지역주민 중심 지방자치로의 변화"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민들이 실제 자치를 체험할 수 있는 영역인 읍·면·동의 주민자치회 관련조항은 법안에서 빠졌다. 여전히 지방자치의 주인은 주민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주민자치회는 이미 전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게다가 동장을 주민추천제로 뽑고 주민총회를 열어 마을 일을 결정하거나 청소년과 청년들이 지자체 정책수립에 참여하는 등 다양한 실험이 이어지고 있다. 내일신문은 지역별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를 발굴, 소개한다. <편집자주>

지난 5일 오산시 고현초교 내 '함께자람교실'에서 마을활동가와 돌봄교사들이 아이들과 종이접기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곽태영 기자


"여러분, '무지개 물고기' 동화책에 나온 열대어를 직접 종이로 접어볼까요?"

지난 5일 오후 2시 경기도 오산시 고현동 고현초등학교 2층 함께자람교실. 송민우 마을활동가와 돌봄 교사 3명이 16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열대어 종이접기'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무지개 물고기' 동화책을 읽어준 뒤 책 내용과 연관된 종이접기 활동을 체험하는 수업이다. 돌봄수업을 진행하는 마을활동가와 돌봄 교사는 모두 고현초교 인접 마을 주민들이다. '내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서 '모두의 아이를 돌보는 마을일꾼'으로 거듭난 셈이다.

◆'과밀학교' 위기에서 싹 튼 희망 = 오산시 '고현마을학교'는 지자체와 학교, 마을주민이 협력해 민주적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는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돌봄교사가 돼 이웃 아이들을 돌보고, 학부모가 교육활동가로 변신해 학교와 마을 8곳에 마련된 배움터에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공동체의식을 불어넣고 있다. 오산시는 마을활동가 양성프로그램과 인프라를 지원하고 마을의 교육자원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고현초교는 돌봄교실·배움터 공간을 제공하고 마을활동가들과 협업해 학교 안팎에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지금은 마을과 학교가 함께 '마을교육공동체'라는 큰 그림을 그려가고 있지만 '고현마을학교'가 만들어진 것은 '과밀학급'이라는 위기에서 비롯됐다. 지난 2015년 고현초교 통학구역인 고현동·청호동·원동에 대규모 아파트들이 입주하면서 '과밀학급' 문제가 대두된 것. 오산시는 교육지원청과 협의해 학교 증축을 추진했고 시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주민들에게 개방할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양측은 협의 끝에 시민개방형 도서관을 짓기로 하고 2017년 준공했다. 그런데 학생안전 등을 이유로 학교도서관과 시민도서관 입구가 분리돼 있어 또 다시 논란이 일었다. 지자체와 학교, 주민들은 TF팀을 만들어 1년 가까이 대안을 모색한 끝에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풀뿌리교육자치협력체계 구축예산 7억2800만원을 투입했다. 2019년 7월 22일 지금의 '꿈키움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시민도서관과 학생전용도서관 중간에 '배움의 방'을 설치해 학생과 주민이 공동으로 이용하도록 설계했고 주민들의 도서관 이용시간 및 범위를 학생들과 구분해 운영한다. 핵심은 도서관 중간에 위치한 '배움의 방'이다. 마을과 학교의 공유공간인 셈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면서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첫걸음이 시작됐다. 윤 철 오산시 교육지원팀장은 "'과밀학급'이란 마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와 학교,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노력한 결과가 고현마을교육공동체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고현마을학교 온라인 시스템(오늘e)을 구축하고 5월에 마을활동가 12명을 위촉, 워크숍과 역량강화 교육을 진행했다. 아파트 관리동의 유휴공간 등을 활용해 8곳의 배움터를 만들었다. 7월부터 마을활동가를 중심으로 아파트별로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를 조사하고 마을별로 남녀노소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을활동가들은 매월 소통회의를 갖고 활동내용을 평가·보완했다. '배워서 나누는 학생·주민 주도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7개 과정에 70여명이 참여했다. 초등생들과 다양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들어보고 이웃·친구들과 나누는 '고현, 맛장금이', 영상촬영·제작을 배워 고현마을학교 홍보 영상물을 직접 제작하는 '나도 크리에이터', 손마사지와 네일아트 등 손으로 하는 취미를 배워 마을주민에게 봉사하는 '손끝으로 전하는 마음' 등이 진행됐다. 지난해 11월 11일부터 24일까지 2주간 열린 '고현마을학교 이웃축제'에는 주민 400여명이 참여했다. 그간의 활동 성과를 정리해 주민들과 공유하는 자리였다.

◆오산 마을교육공동체 전 지역으로 확대 = 마을의 인적자원도 꾸준히 발굴했다. 책놀이·보드게임·원예심리 등을 가르칠 마을강사 52명을 양성하고 역량강화교육을 다섯차례 진행했다. 학교에선 마을강사를 활용해 원예수업 등 마을-학교협력수업(270여명 참가)도 했다. 조규태 고현초교 교감은 "지금은 학교에서 모든 교육을 책임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며 "가정과 마을의 교육적 기능을 회복하고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쌓여 공동체가 회복되면 교육 생태계가 학교에서 마을로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산시는 고현마을학교를 모델로 삼아 마을교육공동체를 전체 동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관련조례를 제정하고 마을교육공동체 지원센터도 설립했다. 현재 6개동에 9개 마을교육자치회를 구성했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오산 마을교육공동체를 통해 지역의 인재를 길러 이들이 연어처럼 지역으로 돌아와 지역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자치교육 시대'가 열리고 있다"며 "오산마을교육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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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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