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힐링명소 | 서울 용산구 '역사문화명소 100'

'사회관계망 성지'에 숨어있는 용산 근현대사

2021-04-27 12:56:27 게재

일제강점·미군정기 지역사 발굴

책자·안내판에 담아 관광자원화

"계단 한 가운데는 '신이 다니는 길'이라 해서 비워뒀답니다. 사람들은 양쪽 끝으로만 오갔지요."

성장현 서울 용산구청장은 "일본이 떠난 뒤에도 '신이 다니던 길'은 나무를 심어 화단으로 남겨두었다"고 말했다. 용산2가동 '해방촌'과 남산을 잇는 이른바 '108계단'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경성호국신사(京城護國神社)에 참배하기 위해 오르던 가파른 길이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이 공무원과 함께 108계단을 찾아 그 유래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용산구 제공


중일전쟁과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전사한 일제의 '호국영령'을 추모하던 사당으로 오르던 가파른 계단길에는 비스듬히 누운 듯이 오가는 경사형 엘리베이터가 들어섰다. 주민들은 마을버스와 용산구 문화셔틀버스 종점과 연결되는 1층부터 36개 계단으로 구분된 2층과 3층을 지나 꼭대기 4층까지 서울 도심 풍광을 바라보며 오르내린다.

용산구가 꼽은 힐링명소는 '역사문화명소 100'이다. 대한민국 근현대 100년 즉 일제강점기와 미국 군정기를 거치면서 지역 정체성이 형성된 점을 고려, 2019년부터 곳곳에 흩어진 역사문화명소를 발굴, 체계적으로 정리해왔다.

지난해까지 안내판을 설치해 주민들과 공유했고 올해는 192쪽에 달하는 책자 한권에 담아 선보이고 있다. 성 구청장은 "지역사를 연구하고 정리하는 건 단체장 책임이고 의무"라며 "역사문화명소 100은 지역사 기록사업 일환이자 지역 문화유산가치를 재발견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하늘아래 첫동네 해방촌은 일제강점기 이후 외국에서 돌아오거나 북녘 고향을 등진 이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됐다. 정착민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가건물이 주거시설로 탈바꿈하고 상하수도 시설이 체계적으로 구비돼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 그 과정에서 경성호국신사는 해체됐지만 식민지의 그림자는 남아있다.

108계단뿐 아니다. 젊은이들이 사회관계망을 통해 전파하고 성지처럼 줄이어 찾는 용리단길에도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다. 조선 말기 네차례에 걸친 천주교 박해때 처형당한 성직자와 신자들이 묻힌 왜고개 성지 터다. 당초 궁궐에 사용하던 기와와 벽돌을 제작하던 관서가 있던 곳인데 천주교 성지가 됐다.

이태원에서는 유관순 열사 추모비를, 한남동에서는 용산공예관과 이슬람 중앙성원을 만날 수 있다. 용산구 관계자는 "108계단 인근 신흥시장도 사회적관계망을 통해 소문난 맛집과 카페가 많아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다"며 "주변 산책을 하면서 근현대 역사문화를 자연스럽게 새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근 삼각지성당은 한국전쟁 당시 고아나 생계가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을 보호하던 '경천애인사 아동원'이었고 신광여자중학교는 연합군 포로수용소였다. 각각의 이야기를 담은 100곳은 사적 330호로 지정된 효창공원처럼 전 국민적으로 알려진 공간도 있지만 용산구가 새롭게 찾아낸 곳도 여럿이다. 여전히 주민들 접근이 제한된 미군기지 내 문화유산 12곳을 포함해 용산구 전역에 이야깃거리가 펼쳐진다. 구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동네 역사를 바로 찾아볼 수 있도록 동별로 목록을 엮었다.

올해는 책자를 기반으로 5~7개 주제로 답사코스를 개발한다. 현장조사와 사료 수집·분석을 진행, 이야기를 입힌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각 명소가 품은 역사적 이야기를 통해 코로나시대 시민들에게 휴식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하겠다"며 "지역 문화유산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은 물론 역사문화도시로서의 경쟁력을 보다 확고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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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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