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재, 중국 히든챔피언 키운다

2021-05-12 12:36:50 게재

닛케이아시아 “중국, 독자적 반도체산업 생태계 구축 위해 전력질주”

중국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경영진은 한달에 한번 비행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날아간다. 중국 최고 경제운용 당국이 마련한 연속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머리를 맞대고 최신 메모리칩의 생산과 미국 기술 의존도 탈피 진척 등을 점검한다.

닛케이아시아 최신호에 따르면 우한시에 위치한 양쯔메모리는 독립적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중국의 국가적 과제를 선봉에서 수행한다. 이 기업은 스마트폰과 컴퓨터서버, 자율주행차 등 대부분 전자제품에 사용되는 최신형 64단, 128단 낸드플래시메모리칩을 양산한다. 이 부문 리더인 한국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2016년 창업한 기업으로선 괄목할 만한 성과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지시한 또 다른 임무를 수행중이다. 미국 또는 미국 기술에 의존하는 전세계 공급업체를 가려내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일이다. 최고사양의 컴퓨터칩을 제조하는 데 쓰이는 장비는 거의 미국이 독점하고 있다. 에칭과 이온주입, 전기화학적 증착, 웨이퍼 검사, 설계소프트웨어와 관련된 시장의 80%는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 의존도 탈피는 중국 입장에선 사활이 걸린 문제다. 중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3500억달러 규모의 반도체를 수입했다. 중국 경제가 미국의 지렛대에 좌우되지 않도록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시급성은 2년 전 명확해졌다. 미국이 스파이 혐의로 중국 최대 이동통신장비사 화웨이를 제재하면서다.
 


화웨이뿐 아니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업체인 중신궈지(SMIC), 세계 최대 감시카메라 제조사 하이크비전 등 모두 합해 100개가 넘는 중국 기업들을 거래불가 블랙리스트에 올렸다. 미 정부의 허가 없이 전세계 어떤 기업도 이들 기업에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판매할 수 없다.

미국 통제 벗어난 플랜B 점검

중국은 제재 가능성이 있는 위험한 부품과 공급업체를 찾아내 이를 대체하기 위한 대대적인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 전례없이 빠른 속도로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우후죽순 늘어났다. 수십개의 기업들이 미국의 선도적 반도체기업을 겨냥해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컨설팅기업 ‘가트너’의 반도체전문가 로저 솅은 “중국은 미국이 자국의 반도체산업을 강타할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중국뿐 아니라 주요국 모두가 반도체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면서 반도체 경쟁이 새롭게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쯔메모리 역시 미국 정부의 레이더망에 놓여 있다. 하지만 이 기업은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양쯔메모리는 중국 당국의 지침에 따라 공급망을 샅샅이 검토하고 있다. 미국 기술 의존도를 대체하기 위해 중국 공급업체 또는 미국 외 공급업체를 찾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2년 동안 800명 이상의 전일제 직원을 새로 고용했다. 여기엔 중국 공급업체들에서 스카웃한 다수의 인재들이 포함돼 있다. 양쯔메모리는 자사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의 원천에 대해 최대한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제조설비에서 화학품, 반도체 제조 기계에 들어가는 초소형 렌즈와 나사못, 수나사와 암나사, 베어링, 생산라인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다. 양쯔메모리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공급업체, 공급업체의 공급업체에 이르기까지 끝없이 확장된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취재원에 따르면 모든 공급업체는 지정학적 리스크와 관련해 점수가 매겨진다. 미국에서 만든 부품은 리스크 최고점이다. 뒤를 이어 일본과 유럽에서 구매한 부품이 뒤를 잇는다. 그리고 중국 기업에서 만든 제품은 가장 낮은 점수를 받는다.

양쯔메모리는 엔지니어들을 장비공급업체의 생산공장에 파견해 부품의 원천 보고서가 실제와 맞는지 다시 한번 검사한다. 그리고 취약점이 발견될 경우 업체에 수정조치 보고서 제출을 요청한다. 여기엔 부품 조달을 다각화하는 방안, 대체품을 찾기 위해 협동할 수 있는 방안 등이 담겨야 한다.

“모든 것을 홀로 해야”

중국 한 반도체기업 경영자는 닛케이에 “이전에도 중국은 반도체 자급자족을 이야기했다. 당시만 해도 외국 반도체 기업과 경쟁할 반도체 개발업체를 육성해야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맨손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경영자는 “예를 들어 우유공장을 짓고자 하면 농장을 사야 하고 젓소를 기르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헛간과 울타리를 지어야 한다. 또 생초를 베어 건초를 만드는 방법 등 모든 것을 홀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쯔메모리의 공급망 정화작업은 최우선 국가과제다. 지난해 봄 코로나19 진앙지였던 우한시가 극도의 봉쇄와 격리가 단행된 상황에서도 양쯔메모리는 예외였다. 우한시 전 지역이 잔인할 정도의 방역수칙을 강제 당하는 동안에도 양쯔메모리 임직원들은 초고속열차를 타고 출퇴근할 수 있었다. 2019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240억 달러 규모의 3D낸드플래시메모리공장에서 양쯔메모리 직원들은 평상시와 마찬가지로 반도체칩 생산에 몰두했다. 반도체제조 재료를 실은 운송트럭들이 수시로 공장 안팎을 오갔다.

우한시가 지난해 4월 격리와 봉쇄를 해제한 이후 양쯔메모리는 전국 각지에서 수백명의 엔지니어들을 동원했다.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흥 반도체장비 제조업체 출신 인재들을 양쯔메모리 제조단지에 배치해 하루 3교대 근무를 시켰다. 제조 프로세스 전반을 점검하는 한편 외국산 부품을 최대한 중국 부품으로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이 사안에 정통한 한 취재원은 닛케이에 “양쯔메모리 경영진은 거의 매달 중국 공급업체가 만든 반도체 제조장비의 채택 목표치를 상향한다”며 “경영진은 미국의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소한 어떤 종류의 대체품들을 확보하고 있는지, 어떤 생산라인에서 미국의 통제를 벗어난 플랜B를 갖고 있는지 알고자 한다”고 말했다.

생산 현지화를 위한 거국적 노력은 양쯔메모리와 같은 중국의 선도적 반도체기업에겐 일생일대 한번 올까말까 한 기회가 됐다. 미중 무역전쟁 시작되고 나서 양쯔메모리의 규모는 급격히 커졌다.

"중국 독자공급망도 중국 봉쇄도 '비현실적'" 으로 이어집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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