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출판-도서관-정부 '전자책 서비스협의체' 구성해야"
출판계, 공공도서관 전자책 대출 서비스에 '저작권 침해' 주장 … 도서관계 "계약 기반해 대가 지불, 법제 정비 필요"
전문가들은 중앙 정부를 포함해 출판계, 도서관계, 전자출판물 유통사, 저자 등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 구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공공도서관이 보다 안정적으로 전자책 대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출판사, 공공도서관에 문제 제기 = 5월 출판사 8곳은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에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의 전자책 대출 서비스에 대해 저작권 침해 등을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을 경기도로부터 위탁 운영하고 있다. 청구취지는 다음과 같다. "1. 피고들은 별지 목록 기재 각 전자책에 대하여 '경기도사이버도서관 홈페이지(https://www.library.kr)' 또는 스마트폰 앱 '경기도사이버도서관'을 통하여 열람(대출) 서비스를 제공하여서는 아니된다. 2. 피고들은 연대하여 원고들에게 각 10만원 및 이에 대해 이 사건 소장 부본 송달 다음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12%의 비율로 계산한 돈을 지급하라."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은 5월 17일 소장을 송달받았고 6월 17일 재판부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에 앞서 2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한국도서관협회(도협)와 각 공공도서관에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온라인 전자책 대출 서비스 중단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 공문에서 출협은 "현행 저작권법 제31조(도서관등에서의 복제 등)은 도서관은 전자출판물 등을 도서관 안에 있는 컴퓨터 등을 통해 열람하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관내열람만 가능한 것"이라면서 "따라서 스마트폰 등 모바일 접속과 도서관 밖에서 이뤄지는 PC 등을 통한 관외열람은 저작권법을 위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어 "위반 행위로 인해 저작권자, 출판권자, 배타적 발행권자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출판사 8곳도 이번 소송에서 이와 동일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협은 같은달 '대한출판문화협회의 온라인 전자책 대출 서비스 중단 촉구에 대한 한국도서관협회의 입장'을 발표하고 "계약의 대상이 되는 전자책은 저작권자 또는 배타적 발행권자의 동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계약 체결 과정에서 서비스의 범위와 조건이 결정된다. 이에 따라 도서관은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면서 "전자책 서비스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도서관이 저작권법을 위반하거나 저작권자, 출판권자, 배타적 발행권자의 권리를 침해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최초 판매의 원칙' 확대 적용해야" = 도서관계를 중심으로 보다 안정적으로 전자책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저작물에 대해서도 '최초 판매의 원칙(First Sale Doctrine)'을 적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최초 판매의 원칙이란, 적법한 방법으로 판매에 제공된 저작물의 복제물의 판매와 배포에 대해서는 저작자의 권리가 더 이상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를 종이책에 적용하면 한번 판매한 종이책은 더 이상 저작자의 배포권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해당 책의 소유주는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타인에게 빌려주거나 판매를 할 수 있다. 공공도서관 역시 이 원칙을 기반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대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전자책에는 최초 판매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전자책의 대출은 복제와 전송을 수반하며 복제와 전송은 저작자의 배타적 권리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저작물의 복제와 전송에 최초 판매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는 디지털 저작물의 경우, 복제와 전송을 하더라도 소유주에게 해당 디지털 저작물이 남아있는 등 물성을 가진 저작물과는 다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공공도서관이 전자책을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대출하는 권리까지는 획득하지 못했다는 논리가 가능해진다.
이호신 한성대 교수는 "전자책의 복제와 전송에는 최초 판매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도서관이 전자책을 구입하는 것만으로 이용자에게 대출을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대출을 해줄 수 있다"면서 "이는 공공도서관이 전자책을 구매하는 과정에서 관련 저작물 이용허락 계약이 수반돼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현실적으로 도서관이 저작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허락을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구매 과정에서 유통사를 통해서 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러나 유통사가 해당 저작물에 대해서 실제로 적법한 권한을 위임받았는가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어렵다"면서 "지금처럼 거래의 안전을 위협하는 상황이 되풀이되지 않으면서 도서관의 전자책 서비스가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으려면 디지털 저작물의 전송에 대해서도 최초 판매의 원칙을 확대해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한 사회적 논의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지은 서울시사서협의회 공동대표는 "전자책을 물성을 가진 책으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쟁점이 된다"면서 "전자책의 전송에도 최초 판매의 원칙을 적용해야 할 필요가 있으며 이와 관련해 모호한 저작권법을 보다 명확하게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서관-유통사 계약서 보완 = 이와 함께 도서관-전자출판물 유통사의 전자책 구매계약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예컨대, 2020년 12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의 연구보고서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개선안 연구'는 '전자책 구매계약서' 표준계약서를 예시로 제안하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문구를 명시했다.
"구매자는 공급자로부터 제공받은 전자책을 도서관 서버에 저장하고, 관내 및 관외에서 도서관 회원 등에게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도록 제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공급자가 판매한 전자책은 구매자가 운영하는 전자도서관 시스템을 활용하여 구매자의 회원 및 임직원에게 도서관 관내 및 외부에서 열람하게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제안한 전자책 구매계약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2월 고시한 출판 분야 표준계약서 10종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앙정부 나서야" = 전문가들은 출판계와 도서관계는 물론, 중앙정부, 전자출판물 유통사, 저자 등 이해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가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책 대출 서비스의 경우, 이 외에도 구독(라이선스) 방식 도입 등 출판계와 도서관계가 논의해야 하는 여러 현안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문체부 내 출판 정책을 담당하는 국-과(미디어정책국-출판인쇄독서진흥과)와 도서관 정책을 담당하는 국-과(지역문화정책관-도서관정책기획단)가 달라 정책의 긴밀한 상호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20년 5월 출판진흥원의 연구보고서 '공공도서관 전자출판물 B2B 계약 개선을 위한 연구'는 '정책 제언'에서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 도서관정책기획단, 출판진흥원, 출판단체, 도서관협회, 전자출판물 유통사, 외부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도서관 전자출판물 서비스 선진화 위원회'를 구성"을 밝힌 바 있다.
이 교수는 "출판계와 도서관계의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한정된 예산으로 대국민 전자책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도서관과 사기업인 출판사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도서관계 관계자는 "출판시장이 어렵고 독서 인구도 감소하는 상황에서 코로나19로 도서관이 전자책 구입을 많이 하고 이용률도 크게 늘었다"면서 "출판계와 도서관계, 전자책 유통사가 머리를 맞대고 출판시장을 활성화하고 독서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건설적 논의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소송을 제기한 한 출판사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출판단체에서 공문을 통해 공공도서관의 전자책 서비스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면서 "도서관의 서비스는 중요하지만 저작권자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되며 최초 판매의 원칙을 디지털 저작물의 전송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면 참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박주옥 문체부 도서관정책기획단장은 "도서관과 전자출판물 유통사의 계약과 관련해 저작권국과 협의하고 있다"면서 "출판계와 지속적으로 협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