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의 재편 … 선진국·신흥국 수직 분업구조 깨졌다

2021-11-18 11:06:16 게재

5가지 GVC 패러다임 변화 주목 … 중국, 조립공장에서 제조국가로 변신

#미국 반도체기업 인텔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 확대를 추진하다 백악관의 반대로 철회했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인텔은 반도체 공급난이 심화되자 최근 중국 청두공장에서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생산을 늘리려고 했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제동을 걸었다.

미국기술의 중국 이전을 막으려는 보호주의 의도로 풀이된다.


2000년대 전 세계시장에서 빠르게 확산되던 글로벌 공급망(GVC)이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들어 약화됐다. 한국은행이 Eora I/O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01~2008년 기간에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GVC 참여도가 각각 4.4%p, 2.3%p 상승했다. 하지만 2012~2015년 중에는 각각 0.2%p, 1.5%p 하락했다. 특히 베트남(-8.2%p), 한국(-3.2%p), 중국(-2.5%p) 등 아시아지역의 하락폭이 컸다.


전문가들은 GVC 패러다임 전환이 크게 다음과 같은 5가지 축을 토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국, 수출자급률 상승·가공무역 비중 하락 = 첫번째는 중국의 위상변화다. 중국은 2000년 이후 세계 최대 최종제품 조립·가공국가로 성장하며 GVC 교역에서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의 성장 정책 기조가 수출·투자에서 내수·소비 중심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조립·생산기지로서의 기능이 줄고 자체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조국가로 변화하고 있다.

글로벌경제 데이터기업 CEIC에 따르면 2007년 77.7% 수준이었던 중국의 수출산업 자급률은 2017년 87.3%까지 상승했으며, 2007년 45.4%였던 가공무역 비중은 2018년 27.3%으로 하락했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중국의 GVC 참여 구조가 '중간재 수입, 최종재 수출 → 원자재 수입, 중간재 수출'로 변화했다"고 분석했다.

유엔 소비자무역통계국(UN Comtrade)에 따르면 중국의 중간재 수입구조는 2000년 원자재가 35.6%를 차지했으나 2017년 48.0%로 급증했다.

가공단계별 수출구조는 2000년 소비재 38.5%, 중간재 27.0%, 자본재 17.7% 순이었다. 그러나 2017년 중간재 35.8%, 자본재 29.2%, 소비재 23.0%로 교역구조가 확연히 바뀌었다.

◆신흥국-신흥국 교역은 증가세 = 두번째는 선진국-신흥국간 수직적 분업구조가 약화됐다.

GVC의 전통적인 분업구조는 선진국이 신흥국에 자본재와 중간재를 공급하고, 신흥국은 최종재로 조립·가공해 선진국에 수출하는 형태다. 하지만 최근 신흥국의 위상 변화로 전통적인 분업구조가 바뀌고 있다.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구매력 증가로, 최종재 생산 후 선진국으로 수출하는 대신 자국내 소비가 늘어난 것이다.

유엔 소비자무역통계국에 따르면 신흥국의 대선진국 교역의존도는 2000년 66%에서 2017년 52%로 하락했다. 또 선진국-선진국 교역 비중은 2000년 55.1%에서 2017년 38.0%로 17.1%p 하락한 반면 신흥국-신흥국 교역 비중은 같은 기간 8.9%에서 17.6%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생산기술 격차 축소로 신흥국의 중간재 자급률이 높아지고, 중국 등 주요 신흥국들의 인건비 상승으로 선진국과 신흥국간 생산비용 격차가 줄어든 것도 기존 분업구조 변화를 촉진시켰다.

한국은행은 "선진국과 신흥국간 생산비용 격차가 줄어들면서 다국적 기업들이 GVC 네트워크에 참여할 유인이 축소됐다"고 진단했다.

◆미국, 보호무역주의 촉발 = 세번째는 보호무역기조의 심화다.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되며, 자유무역의 수호자 역할을 자처하던 미국이 자국우선주의로 돌아서면서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아울러 미국이 국내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규제 조치를 취하면 해당물량이 자국으로 쏟아질 것을 우려한 주요국들이 연쇄적으로 비관세장벽(수입규제)을 높이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대표적인 수입규제인 상계관세 조사 및 발동은 2017년 59건에서 2018년 401건으로 약 5.8배 늘었다. 세이프가드는 16건에서 78건으로 3.9배, 특별세이프가드는 0건에서 33건으로 각각 증가했다.

또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탈중국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주요기업들이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생산거점을 다변화하면서 글로벌 공급사슬에 큰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미중 경제위원회가 미국기업 220개사를 설문조사한 결과, 중국 철수계획의사를 밝힌 기업은 2017년 8%에서 2019년 13% 급증했다.

미국의 리쇼어링 기업수는 2010년 95개에서 2013년 432개로 급증했다가 2018년 267개를 기록하는 등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세계화에서 지역화로 = 넷째, 세계화(Globalisation)에서 지역화(Regionalisation)로 전환되고 있다. GVC 둔화 속에서 아시아권은 '중국', 유럽권은 '독일', 북미권은 '미국'을 각각 거점으로 지역 내 무역이 오히려 확대되는 추세다.

유엔 소비자무역통계국에 따르면 중국의 아시아권 내 중간재 교역 비중은 2011년 57.4%에서 2017년 59.5%로 2.1%p 상승했다.

같은기간 미국의 북미권 내 중간재 교역 비중은 30.5%에서 32.3%로 1.7%p, 독일의 유럽권 내 중간재 교역 비중은 65.1%에서 66.0%로 0.8%p 각각 늘었다.

이 가운데 아시아권의 경우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사회로의 변화속에 우수인력과 첨단산업 기술력을 확보한 한국의 역할이 주목된다.

또 보호무역주의로 역글로벌화가 진행되는 한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표되는 지역무역협정은 2018년까지 총 477건이 발효되는 등 지역주의 확산이 지속되고 있다.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도 주요국들은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미국·멕시코·캐나다협상(USMCA) 등 메가 FTA와 일본-EU, 베트남-EU 등 양자무역협정을 통해 역내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4차산업혁명이 GVC 변화 가속 = 다섯번째, 4차산업혁명에 따른 차세대 공급망 구조 변화다.

제조업은 4차산업혁명으로 노동과 자본 중심에서 기술혁신 중심으로 패러다임이 급변했다. 스마트 팩토리, 3D프린팅 등 4차산업혁명의 첨단기술이 제조업과 융합하면서 제조비용 절감뿐 아니라 다품종 대량생산, 개인별 유연생산이 가능해졌다.

한국무역협회는 "4차산업혁명 기술의 발전 정도에 따라 기존의 GVC 구조는 강화 또는 약화 여지가 모두 있다"며 "스마트 팩토리 등 기술진보에 따른 생산비용 하락으로 글로벌 제조기업들은 기존 생산기지를 자국 중심으로 이전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와 함께 4차산업혁명시대에는 데이터를 활용해 기획 생산 마케팅 분야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새로운 GVC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용래 특허청장은 "데이터는 4차산업혁명시대 경쟁의 무기이며, 산업화시대의 원유와 같은 존재"라며 "통상에서 '상품과 서비스' 중심의 개방논의가 앞으로는 '데이터' 보호와 개방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변화된 GVC 대응은 충분한 기술력이 있을 때 힘을 받는다"며 "글로벌 기술 M&A와 개방혁신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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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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