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산업 기술 통상 시너지로 GVC 패러다임 선도

2021-11-18 12:43:18 게재

위기를 기회로 전환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브라질 아마존의 정글에서 파닥거린 나비의 날개짓이 미국 텍사스에 거대한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나비효과'야 말로 글로벌 공급망에 내재된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설명하기에 적합한 표현이 아닐까.

2010년 아이슬란드에서 화산이 폭발하니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들이 유럽산 부품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장 가동에 차질이 생겼다. 올해초 미국내 기록적인 한파로 텍사스에 있는 삼성 반도체 공장이 셧다운되면서 반도체를 공급받던 애플도 아이폰 생산에 차질을 빚었다.

이처럼 글로벌 공급망은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히 연관돼 있으며, 우리도 최근 요소수 사태를 겪으면서 이를 더욱 절감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이렇듯 촘촘하게 연결된 것은 지난 수십년간 급속히 진행된 글로벌화와 다자무역체제에 기인한 바가 크다. 기업들은 '효율성(efficiency)'극대화의 원칙하에 아웃소싱, 오프쇼어링 등을 통해 여러나라에 걸친 글로벌 생산망을 구축하고 재고는 최소화(Just-in-time system)해 왔다.

국내에서만 2000만명 이상이 접종한 화이자의 mRNA백신도 19개국에서 공수한 280여개 원부자재가 들어가는 대표적인 글로벌 공급망 품목이다.

하지만, 이제 글로벌 공급망 패러다임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지정학적 갈등과 팬데믹 하에서 가속화된 기술패권 경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은 '복원력(resilience)'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재편 중이다.

사실 우리는 이미 한차례 예방주사를 맞았다. 2019년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일본 정부의 갑작스런 수출규제로 우리 기업들은 전례없는 공급망 위기를 겪었다. 당시 우리 정부, 기업, 국민이 원팀으로 뭉쳐 소재부품장비 경쟁력 강화와 다변화라는 특단의 대책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었다.

최근 미국, 유럽, 중동 등 양자·다자 통상협상 출장 중에 각국의 통상장관들과 유수의 기업인들을 만나면서 향후 글로벌 공급망 재편 관련 두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미래 산업의 패권을 좌우할 핵심 글로벌 공급망에 있어 우리 기업들은 긴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십여년 전만 해도 통상 관료로서 우리가 주요국 정부, 기업들과의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주였다면 요즘은 주요국 정부, 기업들이 먼저 우리에게 핵심산업 협력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지금의 위기가 향후 핵심 공급망에 있어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소부장 경쟁력 강화로 슬기롭게 극복했듯 우리 기업은 위기를 기회 삼아 도약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과 의지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튼튼한 제조 기반과 성공적인 K-방역으로 얻은 안정적이고 믿을만한 생산기지로서의 코리아 프리미엄, 전세계 GDP의 85%에 이르는 FTA 네트워크를 활용해 신남방·신북방 등 지역으로 다변화하고, 첨단산업 외국인투자를 적극 유치하며 정부 기업 국민이 원팀으로 지금의 공급망 파고를 헤쳐나가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시대의 통상환경은 더욱 녹록치 않을 것이다. 이제는 공급망 리스크 대응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기술 통상 안보의 패러다임을 선도한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통상당국은 공급망기술 통상간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지정학, 안보 측면도 종합적으로 고려해 우리 미래 산업의 명운을 건 항해에 조타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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