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낙동강 해평습지와 흑두루미

2021-12-08 11:22:54 게재
정수근 대구환경련 생태보전국장

낙동강 해평습지는 낙동강 하구를 제외하면 낙동강 최대 철새도래지였다. 낙동강 안에는 철새들이 쉴 넓은 모래톱이 곳곳에 존재하고, 강 주변에는 먹이터인 논이 양쪽으로 드넓게 펼쳐져 있다.

해평습지는 특히 흑두루미 도래지로 명성이 높았다. 매년 10월 말이 되면 해평습지에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뚜루루 뚜루루'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오면 수십에서 수백 마리의 흑두루미들이 큰 날개를 활짝 편 채 서서히 내려앉았다.

그 모습은 그대로 장관이었고 해질 무렵 새들의 합창 소리는 여느 오케스트라 연주 못지않게 장엄했다.

4대강사업과 해평습지의 수난

그런 해평습지가 수난을 당한 것은 이명박정부 4대강사업 때문이었다. 4대강사업은 철새도래지 해평습지의 존재를 무시하고 낙동강을 파헤쳤다. 드넓은 모래톱은 수십수백대의 중장비에 의해 모두 사라졌다. 강은 깊이 파였고 완공된 칠곡보에 물을 채우자 해평습지는 완전히 사라졌다. 거대한 호수 가운데 하중도만 덩그러니 남았다.

심각한 변화를 제일 먼저 감지한 것은 흑두루미들이었다. 4대강사업 후 이곳을 찾은 흑두루미들은 당황했다. 오랜 세월 그들의 유전자에 박혔을 이동경로에 심각한 변화가 생겼으니 당연했다. 해평습지 상공에서 선회하면서 방황하던 흑두루미들은 지친 날개를 접을 곳을 찾아야 했다.

흑두루미들이 급히 찾은 곳은 구미보 아래 낙동강과 감천이 만나는 합수부였다. 합수부에 감천에서 내려온 모래가 쌓여 제법 거대한 모래톱이 새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모래톱을 대안으로 선택한 흑두루미들은 매년 겨울 그곳을 찾았다.

그러나 감천 모래톱에 풀이 자라자 이곳을 찾는 흑두루미 수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년과 올해는 한마리도 찾지 않게 됐다. 엄밀하게 말하면 흑두루미들이 이곳을 찾지 않은 게 아니라 이 모래톱에 내려앉지 않는 것이다.

지난 11월 4일 해평습지 상공 위로 80마리의 흑두루미가 날아왔지만 내릴 곳이 마땅치 않자 그냥 지나가버렸다. 흑두루미는 이동통로인 '낙동강 루트'를 포기한 게 아니다. 낙동강에 내려서 쉬어가지 않고 곧바로 순천만이나 일본 이즈미로 날아가는 것이다.

이는 흑두루미에게 대단히 위험한 선택이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많이 가고 야간비행으로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한국물새네트워크 이기섭 박사는 "모래섬이 있어야 흑두루미들이 천적인 삵 등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해평습지에 부는 반가운 바람

교란당한 감천 합수부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칠곡보 수문을 약간 열었기 때문이다. 1m 정도 수위를 내렸는데 감천 합수부 모래톱 아래에 모래섬 형태의 모래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칠곡보가 수위를 더 내릴 수 있다면 더 넓은 모래톱이 드러나 흑두루미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줄 수 있다. 환경부는 칠곡보 수문을 열어서 수위를 더 내려야 한다.

다행히 겨울철에는 양수장 가동도 없고 취수장도 해발 19.1m까지 수위를 내려도 괜찮도록 개선을 했다. 칠곡보 관리수위 해발 25.5m에서 5m 정도 수위를 내릴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해평습지는 흑두루미 도래지라는 원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뚜루루 뚜루루' 흑두루미들의 반가운 울음소리가 해평습지에 다시 울려퍼지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