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특성화고 현장실습 개선안 발표│② '사고발생-제도 강화-제도완화-사고발생' 무한 반복

"개선안 양산에도 사고 반복되면 제도 자체에 문제"

2022-01-10 17:38:23 게재

교육 이름으로 고위험군 저임금 노동자 양산 … 고 홍정운군 일했던 기업도 5인 미만 사업장

현장실습에 나선 직업계고 학생들이 숨지거나 다치는 사고가 반복되는데도 실습생을 교육 대상이 아닌 '저임금 노동자'로 여겨온 정부와 기업, 학교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임금·고위험 일자리를 학생들로 채우려는 기업, 취업률로 학교를 평가한 정부, 취업률에 목맨 학교가 이들을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교육부 등에 따르면 매년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일반고 직업반 학생 6만여명이 '현장실습'에 나선다. 이들이 투입된 현장 상당수는 임금이 낮거나 위험해 일반 노동자가 꺼리는 곳이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에 참여하고 있는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 앞에서 위험한 작업을 하다 숨진 현장 실습생 고 홍정운군을 애도하며 촛불 추모 행동을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산재피해 유가족 등 95개 교육·노동·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한 교육노동자현장실천은 최근 성명을 내 "현장실습은 교육을 빙자한 노동력 착취와 죽임"이라며 "직업계고 현장실습을 당장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중소기업 DMC타워에서 '직업계고 현장실습 추가 개선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교육부 제공


이들은 현장실습 제도가 학생들을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존재로서 저임금 노동 착취 환경에 놓이게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특히 정부와 학교가 학생 취업에 대한 책임을 개별 기업에게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인하 교육노동자현장실천 집행위원장은 "개선안이 계속 나와도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은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것"이라며 "현장실습에서 직업계고 학생들은 교육도 노동 아닌 사각지대에 위치하게 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목숨을 잃는 비극은 계속되고 그때마다 정부가 개선안을 내놓았지만 '사고 발생→제도 강화→제도 완화→사고 발생'이 반복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도 23일 현장실습 개선안 브리핑에서 "실습기업의 기준이 낮아짐에 따라 홍군이 1인 기업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며 사고가 발생했고, 이 부분에 대해 저희들도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사실상 잘못을 자인했다.

◆1970년대 산업화 후 변질 = 국내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 제도는 1963년 도입됐다. 나라살림 형편상 학교에 직업교육용 기자재를 제대로 확보해 주지 못한 정부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실제로 학교도 교육목적으로 학생들을 앞다퉈 파견한다.

그러나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발전한 노동집약적 산업에 양질의 대규모 인력을 공급해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박정희정부는 1973년 산업교육진흥법을 개정, 직업계고 학생들이 재학 중 기간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강제했다. 이런 입법조치는 산업체에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해석된다. 박정희정부는 여기에 더해 특정 산업에 필요 인력을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기능 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전국에 기계공고를 만드는 등 중등직업교육을 크게 강화했다.

1980년대 제조업 인력 수요가 크게 늘어나자 이 같은 방향성에서 현장실습도 확대됐다. 전두환 정권은 1986년 산업교육진흥법시행령을 개정해 의무 현장실습 기간을 연장했다.

노태우정부도 늘어난 제조업 인력 수요 충족을 위해 1990년 5월 고교교육개편안을 통해 7:3정도였던 일반계고 대 실업계고 비중을 1995년까지 5:5로 재조정했다.

김영삼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1993년 현장실습 내실화를 명분으로 신경제 5개년 계획의 인력 개발 부문에 직업 기술 교육체제의 개편을 명시하고 '공업계 고등학교 확충 및 산업 현장 훈련 실시' '고교 단계 이후의 직업 기술 교육의 활성화' 등의 방안을 제시한다. 정책의 요지는 공업계 고등학교의 학제를 개편, 현장실습 기간을 1년으로 연장했다.

◆땜질식 처방만 양산 =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교육·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제도변화에 대한 요구가 커진다. 열악한 노동조건과 빈번한 재해뿐 아니라 실습생이 구사대로 동원되는 등 현장실습제도의 폐해가 끊이지 않자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실업위원회와 참여연대 등이 실태조사에 나선다.

이를 계기로 교육인적자원부는 2003년 5월 '고등학교 현장실습 운영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조기취업 형태를 규제하고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업에 한해 학생을 파견해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었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2006년 5월 '전문계고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발표한다. 정상화 방안은 △기업 파견형, 직업체험, 교내 실습 등으로 다양화 △기업 파견형의 경우 3학년 2학기 수업의 2/3를 이수한 이후 실시하되 졸업 뒤 해당 기업에 취업이 보장된 경우로만 한정 △경제적 목적의 아르바이트형 현장실습 금지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발표한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은 완전하지 않았지만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어 교육계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친기업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4월 '그동안 법적 근거도 없는 규제가 양산돼 왔다'며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을 포함한 29개 지침을 폐기했다. 현장실습 행태는 2006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고졸취업을 강조한 2010년부터는 기업들의 요구에 따라 현장실습 시기도 폭넓게 조정됐다. 당시 정부는 특성화고의 취업률 목표를 2011년 25%, 2012년 37%, 2013년 60%로 제시했다. 정부는 취업률에 따라 학교지원금을 차등화 할 뿐만 아니라, 목표 취업률을 달성하지 못한 학교는 통·폐합하겠다고 압박했다.

정부가 학교와 산업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높은 취업률만을 제시하고 옥죄이자 학교가 전공과 무관한 업체에 학생들을 파견하는 일이 늘어났다. 이는 현장실습 과정에서 학생들의 산업재해 증가로 이어졌다.

급기야 2011년 말 기아차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동차 디자인을 전공한 A씨가 주야 맞교대로 일하며 마스크 하나에 의지한 채 페인트칠을 하다 쓰러졌다.

이를 계기로 2012년 4월, 교육과학기술부, 고용노동부 및 중소기업청이 합동으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현장실습 학생이 일반 노동자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 근로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면서 노동관계법을 준수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그간 현장실습 학생은 노동권을 보장 받지 못했다.

2012년 풍랑주의보에도 작업을 강행한 울산 신항만 공사 현장에서 작업선이 전복돼 실습생 3명이 사망하는 등 사고가 계속되자 정부는 2013년에도 '학생 안전과 학습 중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내실화 방안'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근본대책이 되지 못했다. 이후에도 전주 홍수연양, 제주도 이민호군 등 현장실습 제도 속에서 학생들의 죽음은 이어졌다.

◆"선도기업에만 '현장실습' 허용했었으면" = 이민호군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직업계고 실습생의 안전사고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교육부가 사실상의 고교생 노동력 제공 수단이 됐던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을 전면 폐지하기로 했다.

문재인정부는 2017년 12월, 정부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전면 폐지' 계획을 발표하고 '실습'을 명목으로 직업계고 학생을 장기간 사고위험이 높은 업무 현장에 투입되는 일을 금지했다.

정부는 대신 현장실습 교육프로그램에 따라 실습지도, 안전 관리 등을 하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경우에만 허용하기로 했다. 또 학생이면서 근로자였던 현장실습 학생들의 신분을 '학생'으로 특정하고, 현장실습 운영기간도 현행 '6개월 이내'에서 '최대 3개월'로 조정했다. 운영형태는 기존 '조기 취업' 방식에서 '취업 준비 과정'으로 전환했다.

교육부는 제도를 시범운영 기간을 거쳐 2020년 전면 시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일부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재학생의 반발이 나왔다. 학생들이 원하는 것은 취업인데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없앨 경우 취업이 어려워진다는 논리였다.

그러자 교육부는 2018년 2월 '학습중심 현장실습의 안정적 정착 방안'을 발표했다. 문제가 되는 '조기 취업형 현장실습' 즉,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을 폐지하는 게 아닌, 보완·수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안전이 확보된 경우에 한해 겨울방학 전에 취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으로 선회했다. 교육부는 안전 등 일정기준을 충족하는 업체를 '현장실습 선도기업'으로 선정한 뒤, 이러한 기업에 한해서만 학기 중 취업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선도기업으로 인정되지 않는 기업은 겨울방학 이후, 즉 학기가 끝난 뒤 취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2019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선도기업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선도기업 자격이 없는 기업들의 현장실습 참여가 급감해 학생들의 현장실습 기회가 축소된다는 이유였다. 교육부가 2022년까지 고졸 취업률을 60%로 올리겠다고 나서면서 실제로는 노동력 제공인 무늬만 '학습 중심 현장실습'이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 여수의 한 요트업체 현장실습 도중 익사한 고 홍정운군이 일했던 곳도 '참여기업'으로 5인 미만 사업장이었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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