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RI가 바라본 2022년 10대 기술
인간처럼 인식하고 판단하는 다중감각 AI가 온다
"기술지배시대 진입" … AI 전쟁·사이버 팬데믹 대비해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최근 연구진 분석과 국내외 기술동향 보고서를 바탕으로 'ETRI가 바라본 2022년 10대 기술 전망'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서 ETRI 기술전략연구센터 이승민 박사는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기술에 대한 기업 투자와 국가 개입이 증가하고, 기술의 수용성은 급격히 높아졌다"며 "기술지배시대에 진입한 세계는 하나의 디지털 실험장이 됐다"고 지적했다.
김명준 ETRI 원장은 "코로나19 이후 경제·외교·안보 등 세계 질서의 대전환이 예상되는 만큼 ICT 기술우위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고서는 △혁신과 변화 △공간과 경험 확장 △지정학적 긴장과 갈등 고조 등 3대 트렌드로 압축해 10개 기술을 전망하고 있다.
◆다중감각 AI = 2021년 1월 구글은 매개변수 1조6000억개에 달하는 초대형 인공지능(AI) '스위치 트랜스포머'를 공개했고, 중국은 지난해 6월 매개변수 1조7500억개를 가진 '우다오 2.0'을 발표하는 등 초대형 AI 기술경쟁이 치열하다.
몇 년 안에 엄청난 양적 증가를 통해 100조개의 시냅스를 가진 인간의 뇌와 비슷한 규모의 AI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유연한 사고 능력을 닮은 AI를 구현하는 것은 양적 증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재의 초대형 언어 모델은 학습 과정에서 접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보편적 지식을 적용하는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다.
다중감각 AI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주목받는 기술 가운데 하나다. 단순히 여러 감각 정보를 결합하기보다 세상을 인지하는 입력 정보와 이를 표현하는 출력 정보를 연결하려는 시도다.
다중감각 AI에 관해 가장 직관적이고 의미있는 결과를 보이는 분야로는 시각과 언어지능을 결합한 언어 시각 트랜스포머 연구가 대표적이다. 주어진 텍스트를 이용해 이미지 생성하거나 시각 이미지로부터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 주어진 시각 이미지와 관련된 텍스트 질문에 답을 하는 것 등이 있다.
다중감각 AI를 구현한다는 것은 AI가 디지털 공간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프트웨어 2.0 = 수십 년간 굳어져 왔던 소프트웨어 개발 방식이 바뀌고 있다. 많은 산업에서 요구하는 소프트웨어의 논리적 복잡성이 인간이 설계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닌 데이터와 AI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2.0'이 본격화하고 있다. 더 정확하게는 모델 중심의 AI가 아니라 데이터 중심의 AI가 주도하는 소프트웨어 개발방식으로의 전환이다. 데이터가 스스로 코드를 생성하고 진화하는 '소프트웨어 2.0'은 자율주행자동차, 신약개발 등을 혁신하며 거의 모든 산업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웨어 2.0 시대에 더욱 중요해질 양질의 데이터 확보 능력은 자연스럽게 국가 간 '데이터 주권' 문제로 이어질 전망이다.
◆양자서비스 = 양자컴퓨팅이 서비스로 다가오고 있다. 몇 년 내에 등장할 1000큐비트 양자프로세스는 양자컴퓨터가 슈퍼컴퓨터 성능을 넘어서는 양자우위 달성의 의미있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양자컴퓨터가 실험실을 벗어나 본격적으로 산업화 단계로 진입함을 의미한다. 이미 글로벌 ICT 기업들은 양자컴퓨팅을 클라우드 서비스로 제공하기 시작했다. AI 분야에서 기술경쟁력과 별개로 활용의 격차가 발생하듯이, 양자컴퓨터도 비슷한 양상의 격차가 발생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의 활용 격차로 인한 '양자빈곤'이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디지털 휴먼 = 디지털 휴먼이 주목받고 있다. 디지털 휴먼은 사람의 모습으로 감정과 지능을 가지고, 실제 사람과 실시간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상의 인간을 말한다. 인간을 어설프게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과 달리 디지털 휴먼의 외모는 '불쾌한 골짜기'를 넘어섰다는 평가다. 아직은 일방향 소통으로 마케팅과 광고 등에 제한돼 있으나, 점점 활용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휴먼은 앞으로 AI 기술과 결합해 고도로 개인화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디지털 휴먼 기술이 기업의 경쟁우위 요소가 된 것이다.
◆대체불가토큰(NFT) = 블록체인과 콘텐츠가 만나 디지털자산이 탄생했다. 대체 불가 토큰(NFT)의 등장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시장은 몹시 혼란스럽다. 비트코인 등장 시기와 유사하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거대 기업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골드만삭스 시티그룹 등 대형 금융사들은 NFT 기반 디지털자산 분야를 미래 사업으로 인식해 상품화를 비롯해 새로운 사업모델 발굴에 나섰다.
현재 NFT는 기술적 한계와 법·제도적 문제, 기존 자산들과의 충돌 등 다양한 이슈를 안고 있다. 그러나 NFT는 인터넷 등장 이후 처음으로 디지털 파일에 대한 '희소성'과 '소유권'의 가치를 부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계와 신뢰 기반이 약한 가상의 세계에서 NFT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NFT는 새로운 형태의 자산 거래와 디지털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NFT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장기 트렌드로 봐야 한다.
◆비지상 통신 = 고도 120m 이하 지상중심 통신이 3차원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 등장과 저궤도 위성통신의 부상은 비지상 통신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비지상 네트워크 구성 가운데 특히, 이동통신과 저궤도 위성통신의 통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주요국들은 6G 기술 개발 로드맵 내에 비지상 통신기술을 포함해 통신 패권에 대비하고 있다. 비지상 통신은 3차원 공간에서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새로운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고 통신의 패러다임을 바꾼다. 새로운 통신기술을 통한 공간의 확장은 시장 확장뿐만 아니라 우주 패권과 글로벌 정보 지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시간 정밀 측위 = 최근 디지털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지상과 공중, 실내외 구분없이 빠르고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기법들이 등장하고 있다. 밀리미터(mm) 수준의 정확도를 보장하는 초정밀 측위 기술은 일상과 산업을 크게 바꿀 것이다. 기존 측위기술은 지금까지 농업 제조업 유통 등을 고도화했다. 마찬가지로 미래형 모빌리티, 스마트 머신 등과 어우러진 세상에서 실시간 초정밀 측위기술은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져 더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과거에 없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우리의 일상과 산업을 크게 바꿔 놓을 것이다. 초정밀 측위기술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AI 밀리테크 = 2021년 3월 전 구글 CEO 에릭 슈미트가 이끄는 미국 'AI국가안보위원회(NSCAI)'는 전면적인 국방체계혁신을 촉구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권고안은 "국방분야에 AI 채택을 연기하면, 다음 세대의 미국인들은 20세기 도구로 21세기 적과 싸워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AI '강군몽' 전략과 AI 주도 미래 전쟁 준비에 대한 위기감이 미국의 국방체계혁신을 촉구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동안 AI 자율무기 개발과 사용금지를 해 왔던 미국의 결정은 잘못된 것이며, AI 중심으로 국방전력을 전면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간 공공연한 비밀로 진행돼 온 AI 무기화는 앞으로 군사 강대국을 중심으로 더욱 치열하고 노골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미래는 전쟁의 성격과 승패를 AI가 결정하는 시대가 된다. AI 알고리즘이 공격의 속도와 정확도, 의사결정 등에서 인간을 압도하며 전장을 완전히 지배하기 때문이다.
◆사이버 팬데믹 =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디지털 세계는 일상과 경제활동의 중심이 됐다. 그러한 디지털 세계에서 다음 팬데믹이 발생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사이버 공간에서 공격 수단은 더욱 정교해지고, 경제·사회 전반의 디지털 전환으로 공격 표면적이 크게 넓어졌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는 2010년 이후 최근까지 글로벌 리스크 가운데 하나로 '사이버보안 실패'를 지적해 왔다. 또 2021년 주요 아젠다로 '사이버 팬데믹'을 설정했다. 사이버 공격이 조직화하고 국가 개입이 심화하면서 사이버 팬데믹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안보 관점에서 보안 전략을 재검토해야 한다.
◆하나의 세계, 두 개의 표준 = 미·중 간 지정학적 갈등이 기술표준을 둘러싼 디지털 영역으로 확대·심화하고 있다. 제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신기술에 대한 표준 설정자가 국제규범을 주도해 글로벌 패권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보다 먼저 ICT 분야에서 국제표준화 전략을 추진해온 우리에게 '중국표준 2035' 표준 굴기는 위협적이다. 기술표준은 단지 기술과 산업의 문제를 넘어서기에 두 나라에 대한 협력과 경쟁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해야 한다.
미·중 간 경쟁을 주시하면서, 다른 나라들과 디지털 통상과 전략적으로 연계한 표준협력을 통해 우리의 주도권을 확보할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