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률의 기후행동

에너지 마이데이터, 탄소중립 실현의 숨은 열쇠

2022-02-09 11:40:52 게재
우종률 고려대 교수 에너지환경대학원

개별 금융기관에 흩어져 있는 개인 금융데이터를 한데 모아 보여주고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마이데이터' 사업이 2022년 1월 5일 전격 시행되면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 소비자들은 이곳저곳 흩어져 있던 자신의 금융자산과 신용정보를 한개의 스마트폰 앱에 모아 손쉽게 확인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맞춤형 금융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기존 금융회사와 핀테크기업이 소비자의 금융데이터를 통합 분석해 혁신적인 금융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데이터 교류만 활성화했는데도 새로운 부가가치가 창출된 것이다. 정부는 보건·의료, 교육 등 다른 산업에서도 이러한 마이데이터 사업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할 계획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도 탄소중립을 실현하고 에너지 신사업을 창출하기 위해 마이데이터 사업 도입이 필요하다. 우선 에너지 마이데이터가 도입되면 소비자들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자신의 에너지 사용량과 요금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또는 에너지 기업의 보상금에 반응해 불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노력을 하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시민들의 행동 변화는 탄소배출량을 감축시키고 기상조건에 의존하는 태양광,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대응하는 데 이바지할 것이다. 또한 소비자가 에너지데이터를 쉽고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되면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에너지서비스를 창출하는 혁신적인 기업들이 증가하고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기대해볼 수 있다.

에너지 절약에 일자리 창출도 가능

미국에서는 이미 2011년부터 정부 주도로 에너지 마이데이터 사업을 추진해왔다. 오바마행정부는 당시 '기후행동 계획'(Climate Action Plan)이라는 굵직한 기후변화 정책의 일환으로 에너지데이터 공유 플랫폼 '그린버튼'(Green Button)을 구축했다. 그린버튼을 통해 소비자는 실시간 에너지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손쉽게 확인하고, 원하는 경우 자신의 데이터를 에너지서비스 제공업체에 쉽고 안전하게 공유할 수 있다.

2021년 11월 개최된 그린버튼 기업총회 발표에 따르면 현재 미국의 10개 주와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서는 에너지 공급 기업들이 그린버튼을 통해 고객 데이터를 공유하도록 법제화를 완료했다. 이러한 적극적인 움직임에 따라 그린버튼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에너지 혁신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옴커넥트'(OhmConnect)는 전력수요가 높아 전력망에 전기가 부족할 때 그린버튼을 통해 전력사용 데이터를 공유한 소비자에게 전기 사용을 줄이도록 스마트폰 앱을 통해 안내하고 전기를 평소 대비 절약한 만큼 보상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로지컬빌딩'(Logical Buildings)의 경우 상업용 건물 고객의 전력 및 수도 사용 데이터를 분석해 건물 운영비용을 낮추기 위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미국에서 그린버튼을 가장 먼저 법제화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앞서 말한 그린버튼 기반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수가 2013년 도입 이후 5년 만에 10만명 이상으로 증가했으며, 결과적으로 1500만kW의 전력수요를 절감해 50만kW급 발전기 30개의 추가 건설이 불필요하게 되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우리나라 석탄화력발전소 전체 용량의 절반에 달하는 수준이다.

미국 성공사례에서 배워야 할 것들

아쉽게도 한국의 경우 전력·가스·열 등 다양한 에너지데이터가 생성 및 축적되고 있지만, 아직 에너지 마이데이터 사업에 관한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신산업 창출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미국 성공의 이면에는 법령, 제도, 데이터 공유표준 등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준 정부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

우리나라 정부와 에너지 공기업에서도 에너지 마이데이터를 도입하기 위한 초기 기반을 잘 닦아주고, 이후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면 미국 사례와 같이 성공적으로 에너지데이터 플랫폼을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그동안 국내 에너지 시장의 높은 문턱 탓에 뛰어들지 못했던 신생기업의 시장진입과 함께 에너지 신사업 창출도 가능할 것이다.

우종률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