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작의 기후행동

가축분뇨와 탄소중립의 딜레마

2022-02-16 11:31:45 게재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 농특위 탄소중립위원회 위원

가축분뇨에 정성을 쏟는 사람들이 있다. 안성에서 젖소농장을 운영하는 하현제 대표를 만나면 그 마음이 바로 전해진다. 지나는 길에 농장에라도 들르면 다짜고짜 퇴비장으로 이끈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퇴비를 한 움큼 움켜쥐고 냄새를 맡아볼 것을 권한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자연스럽게 퇴비를 손에 들고 부드러운 촉감을 느낀다. 구수한 냄새와 함께 그 정성이 온전히 전해진다.

오래 전 소가 귀하던 시설 소똥은 귀한 자원이었다. 짚단과 섞어 거름에 쌓아두면 이듬해 봄 부슬부슬하고 촉촉한 퇴비가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는 작물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물론 토양을 비옥하게 한다.

퇴비가 적당히 들어간 흙을 만지면 밀가루같이 고운 입자가 아니라 모래만한 알갱이가 만져진다. 입단이다. 유기물이 접착제 역할을 해 고운 흙을 뭉치게 만든 것이다. 이렇게 입단이 잘 형성된 토양은 식물의 뿌리를 잘 뻗어나게 하고, 물과 공기는 잘 통하게 해 맛있고 풍성한 수확을 안겨준다.

요즘엔 가축분뇨가 예전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민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개는 낙후된 축사에서 발생하는 악취 때문이다. 지금은 한가지 걱정이 더 늘었다. 기후변화 때문이다.

농업 온실가스, 2030년까지 27% 줄여야

농사를 짓고 가축을 키우는 과정에서도 온실가스는 발생한다. 작물은 공기 중에 있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서 만들어진 것이니 이게 다시 분해된다고 해도 이산화탄소 양은 변화가 없다.

그런데 온실가스에는 이산화탄소만 있는 게 아니다. 메탄(CH4)과 아산화질소(N2O)도 있다. 메탄은 주로 공기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유기물이 분해될 때 발생하는 반면, 아산화질소는 질소비료나 가축분뇨의 질소화합물이 산화하면서 발생한다.

농업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2100만톤이 조금 넘는다. 전체 온실가스 발생량 대비 2.9%에 불과해 대중적 관심이 크지는 않지만 농업계도 탄소중립으로부터 예외일 수는 없다.

농업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27% 줄여야 한다. 국가 전체 감축목표 40%와 비교하면 작아 보일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식량안보 때문이다. 에너지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농축산물을 생산하는 한 메탄과 아산화질소를 없앨 수는 없다. 단지 일부를 줄일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농업은 2050년 탄소중립이 되더라도 불과 37% 전후까지만 줄일 수 있다. 이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유럽 등 선진국 농업도 비슷하다.

그럼 왜 가축분뇨에 관심이 집중될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농업부문 온실가스의 60% 이상은 축산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축산 온실가스의 2/3는 가축분뇨에서 발생한다. 소의 트림은 사료 첨가제를 이용해서 줄일 수 있지만 가축 사육두수를 줄이지 않는 한 가축분뇨를 줄일 수는 없으니 난감하다. 그렇지만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료에 들어가는 단백질 함량을 줄이면 60만톤 정도를 줄일 수 있다. 그래도 줄여야 하는 축산분야 감축목표량 330만톤에 비교하면 일부에 불과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특단의 조치를 생각해낸다. 퇴비가 농경지로 들어오는 한 아산화질소가 배출되니 아예 일부 가축분뇨에 대해서 퇴·액비화를 포기하고 바이오가스를 생산하거나 폐수처리 방식을 적용해 농업계 밖으로 빠져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가축분뇨 정화처리시설, 바이오가스 발전소, 가축분뇨 고체연료 및 바이오차 제조시설이 단기간에 신축돼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크게 어렵지는 않다. 그렇지만 새로운 시설이 들어설 인근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 게 쉽지 않다. 지금까지 바이오가스 발전소 신축을 위한 노력이 단지 몇 곳만 성공한 이유다.

식탁의 미래, 가축분뇨처리에 달려

우리 식탁의 미래는 앞으로 추진될 가축분뇨처리 사업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충남 홍성의 성우농장 사례처럼 마을주민들과 함께 에너지 자립마을을 만들어 갈 수 있다면 불가능한 꿈은 아닐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도 최고의 기술을 적용해 악취와 환경부하를 최소화해야 하고, 사업주 역시 주민들과 이익을 공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예전에는 가축분뇨를 얻기 위해 소를 키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축분뇨를 소홀히 취급하면서 축산업은 지속가능성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다시 한번 가축분뇨에 정성을 기울여야 할 때다.

남재작 한국정밀농업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