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 제대로 읽기 │ ② 청와대 중심에서 내각 중심으로

이재명 '책임총리제', 윤석열 '청와대 해체' … 모두 "통합내각"

2022-02-18 11:23:21 게재

청와대 슬림화, 국무회의 중심 운영 … 대통령 '만기친람' 극복하나

연정 없는 '공동정부·통합정부 불가능' … '개헌없는 분권' 실험 난제

대통령에게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대통령제를 유지한 채 대통령의 국정장악권을 국회나 총리에게 나눠주는 방안이 여야 대통령선거 후보들의 입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통합을 강조하면서 제왕적 대통령제와 결별하겠다는 선언이다. 이재명, 심상정, 안철수 후보는 책임총리제, 통합내각 등 매우 큰 폭의 변화를 예고한 반면 상대적으로 윤석열 후보는 '공동내각을 내비치면서도 청와대를 해체하는 등 청와대 주도의 국정운영 방식을 바꾸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을 '제왕'으로 만들어온 막강한 인사권과 '만기친람형' 청와대 운영을 바꿀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많다.


◆유명무실한 총리권한을 헌법대로 = 이재명 후보와 심상정 후보, 안철수 후보는 국무총리의 국회 추천제를 내놓았다. 국무총리뿐만 아니라 장관에게 책임과 함께 권한도 주겠다는 의지는 윤석열 후보까지 포함해 주요 정당의 4명 후보 모두에게서 나왔다. 이는 총리의 각료추천권, 해임건의권, 국무위원 통할권 등 헌법에 명시된 총리 권한을 실제로 실행하겠다는 것으로 총리의 권한이 막강해진다는 의미다. 이념이나 지역을 뛰어넘고 성별, 나이 등에서 균형을 잡은 통합내각에 대한 비전 역시 4명 후보에게서 확인됐다.

청와대의 역할에 대한 대대적인 수술도 예고했다. 장관 위에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있는 '옥상옥'과 같은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얘기다. 이 후보는 청와대 비서실을 '비전 제시와 민의 수렴, 공약 이행과 이를 위한 당정과의 정책조정 기능'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다. 윤 후보는 청와대를 해체하고 다시 만들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수석비서관과 민정수석실, 제2 부속실을 폐지하고 인원의 30%를 줄여 정예화된 참모와 민간전문가 중심의 실무형으로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심 후보는 청와대 비서실을 실무형 스텝조직으로 줄이기로 했으며 안 후보는 대통령비서실의 직원과 예산을 절반으로 축소시키기로 했다. 이 후보와 심 후보, 안 후보는 수석보좌관이 아닌 국무회의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광화문역 유세하는 이재명 후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7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에서 유세를 펼치고 있다. 사진 더불어민주당 제공


◆한국형 분권, 새로운 실험 = 과연 내각제에서 가능한 '분권'이 개헌 없이 성공할 수 있을까. 대통령제에서의 내각제 요소 실험에 대한 '기대반 우려반'의 반응이 나온다.

첫 단추는 책임총리 등 국무위원 임명이다.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하는 과정에서 각 정당의 추천권 배분과 규모, 복수로 올라온 후보 명단에서 대통령이 낙점을 하는 과정 등이 모두 넘어야 할 산들이다. 이 과정에서 여야간 협조와 소통, 대통령의 통합의지가 필요하다. 다수당, 여당, 대통령의 '양보'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후보 추천과정을 보면 여야의 힘겨루기로 오랜 시간을 보냈고 대통령이 결국 여당 추천인사를 선택, '추천제도의 유명무실'을 재확인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파' '이념'을 벗어난 탕평인사, 통합인사 역시 '당 대 당' 합의가 절실한데 대통령제 하에서 과연 경쟁정당이 다른 정당 주도의 정부에서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각료추천권, 임면건의권 등을 갖는 책임총리가 국정운영의 상당부분을 관리, 조율하면서 총리의 입김이 세질 수밖에 없고 대통령의 정책과 맞부딪힐 수도 있다는 점 역시 현실적인 과제다. 대통령이 쓸 수 있는 권한인 '임면권'을 활용해 입맛에 맞지 않는 총리나 장관을 해임시키면 '책임총리제'의 공든 탑은 무너지게 된다. 다시 불신이 커지고 그 자리에 가려는 인사의 역할이나 영향력은 점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청와대의 기능 역시 마찬가지다. '5년 단임'기간에 국정과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강력한 장악력으로 속도전을 펼쳐야 한다는 점에서 대통령이 청와대 조직을 비대화시키려는 의지가 강해질 수밖에 없고 다양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만들어 '만기친람'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을 하지 않고 책임총리제를 한다거나 국무회의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은 대통령의 '선의'에 기대는 것으로 언제든지 철회될 수 있다는 의미"라면서 "시스템이나 규정으로 만들어줘야 제대로된 분권, 책임총리, 내각 중심의 국정운영이 가능해진다"고 했다. 박 교수는 "DJP 연합에서도 당시 김종필 총리가 총리의 역할 등을 담은 법안을 만들려다가 실패했는데 구체적으로 책임총리를 어떻게 선출하고 어떤 역할과 권한, 책임을 줄 것인지를 규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해찬 총리, 김종필 총리 정도가 책임총리의 모습일텐데 대통령의 전적인 신임을 주거나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을 때"라고 했다. 이어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했을 때는 대통령이 낙점했을 경우 통과시켜주는 관례도 필요하고 통합정부나 통합내각을 만들려면 개별 접촉이 아닌 당대 당 연합체제로 이뤄져야 실현 가능한 대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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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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