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러시아의 침공에 아시아 국가들이 침묵하는 이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지 한달이 지났으나 전쟁은 악화일로다. 러시아가 화학무기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온다. 미국을 포함해 서구 세력은 "법에 의한 국제질서"를 주장하지만 이를 이행하거나 전쟁범죄(war crime)를 처벌할 의지와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제 와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국방력을 증강하고 러시아 접경지역에 NATO군을 주둔하느라 부산하다. 그러면서도 러시아와의 직접 대결을 피한 채 우크라이나에게 무기만 제공한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가 대리전을 치르면서 매일 사상자가 늘고 수백만명이 국외로 탈출했으며 국토는 초토화되었다.
이번 전쟁이 끝나더라도 러시아와 NATO간 군비경쟁 경제단절 이념경쟁이 뉴노멀(new normal)이 되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러시아는 명분없는 싸움을 벌인 대가를 치러야 하고, 서구도 우크라이나 난민처리와 피해복구에 많은 지출을 해야 한다.
미국은 이번에도 선두에 섰다. 그러나 1990년대 냉전체제 붕괴 후 국제정치 경제정세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예전의 위세가 아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나라는 새정부가 출범해 풍랑을 헤쳐나가야 한다.
대국간 전쟁 불간여, 미국불신이 침묵 원인
우크라이나 사태가 아시아 정세, 특히 미국의 지도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이와 관련해 필자는 러시아 침공에 대해 침묵하거나 중립적인 나라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러시아 침략 후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회자되자, 바이든 대통령은 빠르게 대응했다. 일본 인도 호주와 쿼드(QUAD)정상회의를 가졌고 대만에 사절단을 보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전화했고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한 경고 메시지도 발표했다. 또한 아세안에게 미-아세안정상회의를 갖자고 제안하고 구체적인 날짜를 제시했다.
그러나 쿼드회의에 참석한 인도 총리는 러시아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달라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했다. 10개국 회원의 아세안은 '러시아 침략'에 침묵하고 있다. 두차례 성명을 발표했으나 '러시아' '침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세안 주재 미국과 유럽대사들이 주재국 정부에 러시아 비난 성명을 발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싱가포르 외에는 응하지 않았다. 미-아세안정상회의를 갖자는 미국 제의에 대해 일정 조정을 이유로 연기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중 미국과 정상회의를 갖는 것에 난색을 표하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아세안이 왜 이렇게 냉정할까. 베트남 라오스는 해외무기 구입에서 러시아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나 이런 개별사정보다 큰 나라 싸움에는 간여하지 않는다는 아세안 외교원칙을 고수하는데 의견일치를 본 듯하다. 또한 미국을 신뢰하지 않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신뢰도는 아세안 지식인을 상대로 매년 실시하는 여론조사에 나타나 있다. 바이든행정부의 미니다자주의(minilateralism)가 인·태전략을 이끌어나가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한편 중국은 때론 푸틴 입장을 대변하기도 하고, 때론 우크라이나 지도자와 통화하고 인도적 물자를 지원한다. 미국과 유럽은 양다리외교를 비난하지만 은근히 중국의 역할을 기대하는 듯하다. 이제까지 국제위기를 활용해 국가위상을 높여온 중국이 이번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국내분열 심각한 나라 외교는 신뢰 못얻어
러시아의 침공이 인·태 지역의 미중관계에도 큰 변화를 줄 것이다. 어떠한 변화가 있더라도 한국 외교의 기축은 한미동맹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성급하게 행동하기보다 상황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요즈음 쿼드 가입, 사드 추가배치, 핵무장(핵 공유)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나 혼돈과 전환의 시기에 결정할 문제들이 아니다. 아세안 외교에 '수천명의 친구는 있지만 적은 없다'(thousand friends, but no enemy)라는 말이 있다. 적과 아가 불분명한 안개 속에서는 적을 만들지 말라는 조언이다.
끝으로 윤석열정부가 외교 격랑을 헤쳐나가려면 무엇보다 국내 좌우세력의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다. 요즘 미국 TV를 보면 민주당은 CNN에, 공화당은 폭스뉴스에 나와 우크라이나 정책을 두고 신랄하게 상대방을 공격한다. 국내 분열이 심각한 나라의 외교는 신뢰를 얻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