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종률의 기후행동
전기차 보급, 속도보다 내실이 중요하다

탄소중립이 뉴노멀로 자리잡으며 각국 정부는 공격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을 내놓고 있다. 특히 전기차 보급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신성장동력도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기에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우리 정부도 2020년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며 과감한 재정투자를 통해 2030년까지 전기차 300만대(전체 판매차의 33%)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바로 다음해인 2021년에는 탄소중립 선언과 함께 이 목표를 362만대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는 충전 인프라 구축과 충전요금 동결을 골자로 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에 따라 전기차 보급 사업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공격적인 정책 목표와 달리 단편적인 성과에만 급급한 모양새다. 새정부가 들어서는 지금 전력망 및 충전 인프라 관점에서 전기차 보급정책의 실효성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전기차 연료인 전기의 친환경성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필자의 연구에 따르면 국내의 전원믹스 아래 운행거리에 따른 전기차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72gCO2eq/km로 휘발유차(120gCO2eq/km)와 비교해 감축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발전량 중 석탄 및 가스발전 비중이 64%로 매우 높은 탓이다.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노르웨이에서는 2gCO2eq/km, 원자력발전 비중이 높은 프랑스에서는 7.5gCO2eq/km에 불과하다. 탄소중립이라는 원래의 목표를 상기한다면 화력발전 비중은 낮추고 재생에너지 및 원자력 비중은 높이는 방향으로 전원믹스를 전환하면서 이에 맞춰 전기차 보급 속도를 조절해도 괜찮을 것이다.
전기차 시대 앞서 전력수급문제 점검을
그뿐 아니라 전기차 보급 시 급격히 증가할 충전용 전력수요를 안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해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로 전환하려면 미국 전력 생산량이 지금의 2배로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전기차 보급에 열정적이던 중국에서는 작년 전력난으로 인해 충전소가 폐쇄되어 전기차 운행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게다가 전기차 충전은 주로 일과 후 저녁시간에 집중되기 때문에 낮에만 발전하는 태양광 비중이 향후 크게 증가하면 일몰 후 전력부족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에 앞서 전력수급에는 문제가 없을지 점검하고, 발전 및 송배전 설비 확대를 준비해야 한다. 전기차 보급을 고민하는 환경부와 전력수급을 고민하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유기적인 협업이 필요한 대목이다.
또한 충전시설의 양적 확대에 집중하기보다는 실제 이용자의 행태를 반영해 정말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충전시설을 배치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미 MIT 연구팀은 미국인의 생활패턴 데이터를 분석해 고속도로 급속충전기 보급이 전기차 확산의 숨은 열쇠라는 것을 확인했다. 고속도로에 급속충전기를 추가 보급하면 주행거리가 짧고 충전시간이 긴 전기차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 미국 운전자 대부분이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더라도 기존의 운행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충전기를 가정 및 직장에만 보급했을 때 미국 운전자의 10~40%만 기존 운행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과 비교해보면 충전기의 전략적 배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가늠해볼 수 있다.
이를 반영해 올 2월 미국 연방정부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확대 정책 'NEVI'(National Electric Vehicle Infrastructure Formula Program)를 발표했다. 이 정책을 통해 한시간 내 완충이 가능한 고속충전기를 미국 전역 고속도로에 80km당 최소 4대씩 갖추도록 향후 5년 동안 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재정투자에만 기대서는 지속가능 어려워
우리나라에서도 충전 인프라를 확대하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으나 정교한 분석에 기반한 정책 실행은 보기 어렵다. 실제 충전소가 적재적소에 배치되지 못하고 관리가 잘 안돼 전기차 운전자들의 불만이 높다고 한다. 효과적인 전기차 보급을 위해 노력하는 미국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전기차로의 성공적 전환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서는 에너지시스템 전환, 사람들의 실제 생활양식에 최적화된 충전 인프라 확대 등 기술과 우리 사회의 유기적 관계까지 고려한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재정투자에만 기댄 단편적인 전기차 보급정책은 지속가능하기 어렵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새정부에서는 속도보다는 내실을 갖춘 전기차 보급정책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