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국회의원 사무실은 갑질 '사각지대'

채용·면직, 의원 마음대로 … '공사 구분 없는 업무'까지

2022-05-26 11:34:46 게재

45평 안에 모인 국회의원·보좌진 10명의 잔인한 '갑을 관계'

"밖에선 공정, 안에선 갑질" … 국회 불신은 국회의원실부터

바쁜 의원 뒤 보좌관의 악용 … 보좌진·피감기관에 폭언도

국회인권센터 3명뿐 … 국회의원 등 가해자 조사 한계 많아

A보좌관은 지난해 12월경 B의원으로부터 강제추행과 성희롱 발언 등으로 성폭력을 당했다. A보좌관과 B의원은 오랫동안 정치역경을 같이 헤쳐 온 동지같은 관계였다고 한다. A보좌관의 충격은 컸다. 그는 중등도의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견뎌내야 했다. 중등도는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한 수준이다.

한 달이 지난 올 1월에 A보좌관은 진단서를 제출하면서 B의원에게 질병휴직을 요청했지만 B의원은 수용하지 않았다.

사과하는 박지현·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더불어민주당 박지현·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성비위 사건으로 제명된 박완주 의원과 관련해 민주당의 입장을 밝히고 공식 사과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 달 22일 A보좌관은 결국 당 젠더폭력신고센터와 윤리감찰단에 신고했다. 그러자 B 의원은 일주일 후인 29일에 A보좌관에게 어떤 언질도 주지 않고 허위로 서명한 사직서를 근거로 면직 처리하도록 다른 보좌진에게 지시했다. A보좌관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자 당일에 곧바로 의원면직 신청을 취소하고 직권면직으로 바꿨다. 직권면직 요청 사유에는 "더 일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표시와 무단결근"이라고 기재했다.

면직예고제에 따라 직권면직 요청 이후 한 달이 지난 후에야 면직이 가능해졌다. 지난 16일 A보좌관은 결국 B의원을 경찰에 고소했다. 고소장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처벌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일어난 남성 의원에 의한 여성 보좌진 성폭력 사례다. 10여 년간 같은 길을 걸어온 동지 같은 보좌관에 대한 성폭력은 의원회관에 충격을 안겨 줬다. 성추행에 그치지 않고 폭언에 이어 문제가 불거지자 면직시키기 위해 사직 서명을 대리하기까지 했다. 피해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추행이라고 했다. 힘을 가진 의원이 피고용인인 보좌진에게 가한 성 범죄라는 얘기다.

◆국회의원실에서는 무슨 일이 = 서울 여의도 국회에 들어서면 정면에 돔 형식의 의사당이 있고 왼쪽에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업무를 보는 국회의원 회관이 자리잡고 있다. 의원실 방마다 9명의 보좌진이 배정돼 있다. 국회의원과 9명의 보좌진 등 10명이 들어가 있는 45평 규모의 의원실 세계에서는 때로는 잔인한 갑을 관계가 펼쳐진다.

국회의원실 내의 성폭력은 2018년 국회 윤리특위에서 성공회대에 맡겨 이뤄진 의원회관 전수조사에서 이미 그 심각성이 상당부분 드러났다. 의원들의 보좌진 가해가 확인됐고 직급이 높은 4~5급 남성 보좌관의 직급이 낮은 여성 비서관(당시 비서나 인턴)에 대한 성폭력도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기명으로 답한 958부를 회수, 분석한 결과 66명이 '직접 성폭력 피해를 봤다'고 했다. 가해자는 주로 6급 이상의 상급자였고 국회의원으로부터도 음란한 내용의 전화, 문자, 메일 등을 받거나(8건) 성희롱을 당하는(2건) 등 10건의 피해가 접수됐다고 했다.

국회의원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이런 문제들이 음성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일까.

현상적으로만 보면 높은 직급에 남성이 주로 포진돼 있다. 26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이달 기준으로 전체 2268명의 보좌진 중 여성은 738명으로 32.5%였다. 4급과 5급은 각각 10.1%, 25.0%에 그쳤고 6급도 31.7%로 평균치를 밑돌았다. 7급은 39.4%이고 8급은 56.0%로 남성비율을 앞질렀다. 9급은 여성비율이 61.5%에 달했다.

국회의원실 내의 성폭력 원인으로는 '업무상 위력'이 지목받고 있다. 보좌진에 대한 임명권과 면직권은 의원에게 있다. 이를 의원의 측근인 선임보좌관이 전횡하기도 한다. 채용 기준은 별도로 없다. 국회 게시판에 채용 공고를 내고 면접 등을 통해 뽑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친인척을 채용하기도 했다. 요즘엔 친인척 채용 현황을 보고하고 공개해야 하므로 거의 사라졌지만 의원들간에 교환해서 채용해준다는 '품앗이'는 일부 남아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면직도 쉽다. 강제로 사직시키려면 30일 전에 통보해야 한다는 규정이 최근에야 만들어졌지만 이 또한 '사직'으로 돌리기 일쑤다.

'맘대로 채용'과 '쉬운 해고' 그리고 이직때 중요한 세평(외부인의 평가), 국회의원의 폭넓고 강력한 권한 등을 고려하면 피고용인인 보좌진이 느끼는 국회의원의 '위력'은 매우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당직, 상임위, 연구단체 등 의정활동 뿐만 아니라 지역구 관리, 각종 행사·경조사 등까지 챙겨야 하는 의원이 사무실을 자주 비우게 되면 자연스럽게 의원의 권한을 위임받은 선임보좌관의 권한남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여기에서 의원과 함께 보좌관의 보좌진에 대한 폭언 등 갑질이나 성폭력 등이 현실화될 수 있게 된다.

◆보좌진이 자주 바뀐다면 = 보좌진의 잦은 변동은 '갑질' 의원실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읽힌다. 의원회관에서는 보좌진들이 많이 바뀌는 의원실 이름이 공공연히 거론된다. 구체적으로 갑질 의원과 갑질 보좌관의 이름도 나돈다. 순위가 매겨지기도 한다.

윤석열정부 첫 내각 인사청문회에서 당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후보자의 보좌진 '손바뀜'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송옥주 민주당 의원이 국회 사무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 보좌진 평균 근속일수가 1년 2개월 정도였다. 김 후보자는 19대 국회에서의 의정활동 38개월간 30명 이상의 보좌진을 바꿨다. 임기 내내 보좌한 2명을 제외한 나머지 보좌진의 평균 근속 일수는 7개월 가량이었고 엿새 만에 그만둔 사례도 나왔다. 근무기간이 100일이 안 되는 보좌진도 14명에 달했다. 이들에게 부여된 공식휴가는 '0일'이었다. 이 후보자 측은 "(명단) 확인 결과 내부 승진으로 중복되는 인원이 있다"며 "(퇴직자들은) 건강상 이유 등 개인 사유 등으로 퇴직한 걸로 기억한다"고 했다.

◆다양한 갑질들 = 의원실에서 나오는 갑질은 다양하다. 국회의원 개인의 일상 업무 뿐만 아니라 '52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업무, 폭언 등 직장내 괴롭힘이 대표적이다.

모 여성 비서관은 "여성 의원의 옷을 골라 주러 가거나 미용실을 같이 가는 경우도 있다"면서 "의원 가족들의 항공티켓팅이나 각종 예약 등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모두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경우"라고도 했다. 모 보좌관은 "의원실에서는 사적인 일과 공적인 일이 뒤섞여 있다"면서 "이러한 관행을 하급자들이 문제제기하거나 거부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했다.

모 국회의원은 "외부 일이 많다보니 내부 일을 선임보좌관에게 믿고 맡기는 경우가 많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위계에 따른 문제들이 생길 수 있을 것 같다. 챙겨봐야겠다"고 했다.

국회의원실 내부의 갑질은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출발점이다. 모 비서관은 "방송이나 상임위, 기자회견장에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는 의원이 국회의원실 안에서 보좌진을 대하는 태도는 갑질 중의 갑질"이라며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는 선임보좌진은 의원을 배경으로 자기 맘대로 방(의원실)을 운영한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의원실의 비민주적인 운영은 피감기관에 폭언 등으로 옮겨붙기도 한다"고도 했다.

국회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8년부터 인권센터 설치를 시도했지만 인력, 예산 등의 이유로 미뤄지다가 올해 1월에 들어서야 겨우 실행할 수 있었다. 국회 소통관에 위치한 인권센터는 센터장, 인권보호관, 상담사 등 모두 3명으로 운영된다. △인권 상담 및 인권침해(성희롱, 성폭력 포함) 조사와 처리 △인권 보호 관련 교육 프로그램 지원 △인권 보호 관련 정책연구와 대외협력 △기타 고충 상담 등 인권보호에 관한 사항 등을 담당하고 있다. 국회 사무처 감사관실 소속이다.

하지만 인권센터가 국회의원실 뿐만 아니라 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도서관 직원들의 인권관련 사안을 모두 다뤄야 하고 특히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조사 등에 불응할 경우 사실 확인 등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적지 않다. 국회 사무처는 "인권센터가 올해 초 개소해 정착해 나가는 단계에 있고 직제 반영과 예산 확보 등 현실적인 제한이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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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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