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인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

"국회, 성폭력 피해 전수조사 이후 한발짝도 못 나가"

2022-05-26 11:34:46 게재

'2018 국회 성폭력 실태조사' 책임연구

"인권센터-보좌진 신분보장 강화해야"

"국회의원실의 저항이 컸어요. 그때 서지현 검사가 미투하면서 성폭력에 대한 분노여론이 높을 때라서 그나마 전수조사를 할 수 있었지 아니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당시 국회윤리특위 위원장이었던 유승희 국회의원이 의원실마다 친전도 돌리고 했지만 설문조사 연구원들에게 심하게 대하는 분들도 있었고요."

2018년4월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서 의뢰한 '국회 내 성폭력 실태조사' 책임연구를 맡았던 박인혜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 연구원(당시 연구교수·사진)은 24일 내일신문과 전화 인터뷰에서 조사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국회의원실의 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조사를 진행한 결과 나온 내용은 심각했다. 당시 사회 각계를 휩쓸고 있던 미투 열기에도 유독 조용했던 정치권이었지만 실태조사를 해보니 성폭력의 사각지대가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에게 배포한 1818부 중 958부(52.7%)를 회수해 분석한 결과 성희롱 338건, 가벼운 성추행 291건, 심한 성추행 146건에 달했다. 국회 내 성폭력이 다른 조직에서 일어나는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권력관계를 악용한 갑질이었다는 점도 드러났다. 피해자는 7급 이하 여성에게, 가해자는 6급 이상 남성에 몰려 있었다. 위계관계 하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어떤 때는 갑질로, 어떤 때는 성폭력으로 나타났다.


실태조사 이후 국회는 한발짝이라도 나아갔을까. 박 연구원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그가 단언한 이유는 국회 내 성적인 갑질이 일어날 수 있었던 토양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공무원법 상 별정직 공무원인 국회 보좌진들은 신분이 매우 불안정하다. 채용조건이나 임용절차 등이 모두 국회의원에게 달려 있다. 신분보장이 매우 취약한 노동자 입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보좌진들이 저항할 수 있거나 자기방어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극히 낮아진다.


"당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제점으로 짚었던 것이 국회의원실의 불평등한 권력관계,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입니다. 다른 조직도 이런 문제들을 갖고 있지만 국회는 어느 조직보다도 굉장히 심하다고 느꼈습니다. 보좌진들의 임면이 모두 국회의원 한 명에게 달려 있으니 무슨 일을 당해도 쉬쉬할 수밖에 없게 되고, 사무실 하나하나가 독립된 공간이다 보니 남의 의원실 일을 터치할 수 없는 문화가 확실해요. 보좌진 입장에선 현재 근무하는 의원실에서 한 번 평이 나빠지면 다른 의원실에 재취업하기도 어려워지고요. 그러니 갑질이나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호소하기에는 자신이 입게 될 불이익이 너무 큰 거죠."

보좌진들의 불안정한 처지를 바꾸지 않으면 성폭력이 또아리를 틀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은 여전히 그대로인 셈이다. 보좌진들의 신분보장 필요성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이유다. 만약 신분보장 강화가 당장 어렵다면 국회 내 성고충 대응 시스템이라도 잘 마련돼 있어야 한다. 지난 1월 개소한 국회인권센터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박 연구원은 회의적이었다.

"국회 내 인권침해나 직장 내 괴롭힘, 성폭력 등에 대해서 조사업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지긴 했지만 인력이나 예산이 상당히 열악하다고 들었습니다. 말뿐인 기구가 되지 않도록 좀 더 권한이나 규모를 강화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정기적인 실태조사 필요성도 강조했다. 2018년 당시 전수조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회의원와 보좌진들이 긴장을 했던 선례를 보면 정기적인 전수조사를 실시한다는 사실 자체가 심리적인 견제장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게다가 정기 조사를 한다면 한눈에 현 상황과 추세를 파악해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 시사점을 도출해낼 수 있다.

"국회 내 성폭력에 대해 정기적인 실태조사를 하는 것은 기본 데이터를 쌓아간다는 측면에서도, 또 조사를 실시한다는 것 자체로 견제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합니다. 다만 누군가 시작을 해야 하는데 반발이 얼마나 클지를 아니까 누구도 시작을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에요. 국회가 스스로를 개혁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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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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