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결과에 앙심' 변호사 사무실에 방화

2022-06-10 11:10:39 게재

대구 화재로 7명 사망, 50명 부상

방화범 추정 50대 현장에서 숨져

9일 오전 10시 55분쯤 대구 수성구 범어동 7층 건물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지고 50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했다. 민사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은 용의자의 방화로 벌어진 참사다.

대구 변호사 빌딩 화재 합동감식│9일 대구 수성구 범어동 법원 뒤 건물에서 불이 나 7명이 숨진 가운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합동 감식반이 현장에 투입됐다. 사진 대구소방안전본부 제공


9일 대구소방안전본부 등에 따르면 이번 소방당국에 화재 신고가 접수된 시간은 오전 10시 55분이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59대와 소방대원 150명 동원해 진화에 나섰고, 20여분만인 11시 17분 만에 진화에 성공했다. 불이 난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7층 건물로 대구지방법원 근처여서 변호사 사무실이 몰려 있었다. 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곳도 이 건물 2층의 한 변호사 사무실이었다.

사망자는 남성 5명, 여성 2명으로 이 가운데 남성 1명은 방화 당사자이고 나머지 6명은 이 사무실에 근무하던 변호사와 직원들이다. 부상자는 단순 연기 흡입 등 50명으로 파악됐다고 소방당국이 밝혔다. 부상자 중 일부는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를 방화범에 의한 소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 방화범이 인화물질이 담긴 것으로 보이는 통을 소지하고 자택을 나서는 장면이 담긴 CCTV 화면과 화재가 난 건물에 들어서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을 확보했다. 이 방화범은 이날 10시 53분쯤 혼자 흰 천으로 감싼 물건을 들고 건물로 들어섰고 곧바로 2층 203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대구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인화물질을 사용해 불을 지르면서 순식간에 불이 번졌고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급속하게 번져 피해자들이 대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50대 남성이 민사소송에 패소하자 상대측을 변론했던 배 모 변호사에게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사고 당시 배 변호사는 다른 지역에서 재판이 있어 현장에 있지 않았다. 또 같은 사무실 직원 한 명도 이날 출근하지 않아 화를 피했다.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2013년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 신축사업을 하는 시행사와 투자계약을 맺은 뒤 2015년 6월까지 7억여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2019년 투자금 중 5억여원을 돌려주지 않는다며 시행사와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시행사에는 투자금을 반환하라고 판결했지만 시행사 대표에 대한 청구는 기각했다. 이에 불복한 이 남성은 지난해 다시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투자금과 지연이자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배 변호사는 시행사 대표의 소송대리인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과 관련 대구경찰청 수사과장을 팀장으로 수사전담팀을 구성해 실체적 진실 규명에 나섰다.

화재가 난 건물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 2017년 화재예방·소방시설 설치유지법 시행령이 개정돼 6층 이상 건물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됐지만, 이 건물은 그 이전에 준공됐고 바닥면적도 설치기준 면적인 1000㎡를 넘지 않아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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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일 · 대구 최세호 기자 seh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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