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의 과학산책
북한 수학자 리학성이 가르쳐 준 것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얼마 전에야 봤다. 극장 개봉은 지난 3월이었지만, 극장에 가지 않기에 넷플릭스에 올라온 6월에야 봤다. 영화에는 북한에서 탈출해 남한에 온 수학자 리학성(최민식 분)이 나온다. 리학성은 수학의 오래된 난제라는 '리만 가설'을 푸는 천재 수학자로 나온다.
그가 영화 속에서 수포자(수학 포기자) 고등학교 학생에게 하는 얘기가 기억에 남는다.
"수학을 잘 하려면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네?" "머리겠죠, 뭐."
"머리 좋은 아새끼들이 제일 먼저 포기한다." "그럼 설마 노력 이런 거 아니죠?"
"그 다음으로 자빠지는 놈들이 노력만 하는 놈들이야." "아자, 할 수 있다. 뭐, 이런 거요?"
"고거는 객기고." "…."
"용기. 문제가 안 풀릴 때는 화를 내거나 포기하는 대신에 '야, 이거이 문제가 참 어렵구나, 야. 내일 아침에 다시 한번 풀어 봐야 갔구나'하는 여유로운 마음, 그거이 수학적 용기다. 그렇게 담담하니 꿋꿋하게 하는 놈들이 결국에는 수학을 잘 할 수 있는 거야."
리학성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다. 진실은 그의 말 언저리에 있을 거다.
올 국제수학자대회에 더 관심 쏠린 이유
어떻게 잘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학을 잘 하는 사람들이 6일(수)부터 14일(목)까지 핀란드 헬싱키에서 국제수학자대회(ICM)를 연다. 4년마다 열리는 수학자의 축제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일부 참석자는 헬싱키에, 그리고 대부분의 수학자는 비대면으로 행사에 참석한다.
지금 세계 수학계의 관심은 북유럽으로 쏠려 있다. 특히 대회 개최 하루 전날 수학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메달' 수상자 발표가 있다. 올해 행사에는 허준이 박사(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유력한 후보여서 특히 한국 수학계는 기대감으로 들떠있다.
5일 수상자 발표가 있고, ICM 개막 첫날인 6일 종일 필즈메달 수상자의 기념 강연이 있다. 필즈상이 ICM의 하이라이트이기 때문에 일정이 이렇게 잡혀있을 거다. ICM사이트에 올라온 첫날 행사 일정표를 보면 6일 네 사람의 필즈메달 수상자가 시간을 달리해 강연을 한다. 그러니 필즈메달 수상자가 4명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필즈메달은 최소 2명부터 최대 4명에게 돌아간다.
첫날에 이어 이튿날부터는 수학의 분야 별로 그 분야의 최고수들이 강연을 한다. 이들은 1호실~11호실에서 동시에 열리는 분과들 모임에서 45분씩 발표한다. 한국인 강연자(session speaker)가 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korea'(한국)로 검색해 보니, 한사람이 보인다. 강현배 인하대학교 수학과 교수가 8일 오후 1시15분에 강연을 한다. 그는 편미분방정식 연구자다. 어떤 연구를 했나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포여-세괴 추측'과 '에셀비 추측'을 증명했다고 한다. 두개의 추측이 무엇인지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한다.
교양 수학책 '수학이 필요한 순간' 저자로도 일반에 익숙한 김민형 교수(영국 에든버러 국제수리과학연구소장) 이름도 보인다. 김 교수는 ICM에 진행자(moderator)로 참석한다. 이경화 서울대학교 수학교육과 교수는 수학 교육 관련 분과 토론자로 이름이 올라와있다.
미국 대학교에서 일하는 두 한국 수학자가 강연자로 이름이 올라와있다. 사람 이름 옆에 써 있는 국가 분류가 '미국'으로 되어 있어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신석우(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백진호(미시건대) 박사다. 이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지인들로부터 얘기는 많이 들었다. 잘 하는 수학자로 알고 있었지만, ICM 강연자로 선정된 걸 보니 대단하다는 느낌이다. 신석우 백진호 박사는 강현배 교수보다는 후학이다.
필즈메달 수상의 낭보를 기다리며
리학성은 '리만가설'이 옳다는 걸 증명해 내는 걸로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 설정되어 있다. 리만가설은 1859년 독일 수학자 베르나르트 리만이 내놓았고, 가설이 옳은지 아직도 증명되지 않았다. 리만가설 증명은 1900년 세계수학자에서 제기된 '20세기에 해결해야 할 중요한 수학 문제 23개'에 들어가 있다.
필즈메달을 받았다는 낭보를 기다린다. 수상으로 인해 한국 사회의 수학에 대한 관심이 점화하길 기대한다. 그에 자극받아 수학자의 길을 걷고 싶어 하는 학생이 나올 수 있다. 나중에 실제 리만가설을 증명하는 업적을 남길지도 모른다. 또 과거 '수포자' 어른이라면 늦게라도, 서점의 수학책 코너를 기웃거릴 수 있을 거다. 수학책이 힐링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