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락의 기후행동
탄소중립이라는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코로나 사태만 잘 견디면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간혹 위기론이 불거져도 견고한 글로벌 시장경제 구조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난공불락일 것으로 믿었다. 그런 세계 경제가 우크라이나전쟁으로 휘청이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라는 비장의 무기로 세상을 주물럭거리고 있다.
그간 지구온난화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을 주도하던 유럽연합(EU)이 직격탄을 맞았다. 러시아가 가스관 밸브를 잠그자 세계 에너지전환의 선두주자 독일은 눈물을 머금고 석탄발전 비중확대를 발표했다. 그것도 독일 에너지전환을 이끌었던 녹색당 소속의 경제장관이 총대를 잡았다.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그리고 이탈리아마저도 비슷한 상황이다. EU 집행위원장은 역내 국가들의 석탄발전 재가동에 우려를 표하며 재생에너지 투자 확대를 멈추지 말 것을 호소한다. 다가올 에너지 대란과 싸워야 할 지도자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유럽을 구원해 줄 것으로 믿었던 미국 상황도 녹녹지 않다. 위축되었던 셰일가스 산업의 형편상 단시일 내에 유럽이 필요한 가스수요를 충분히 공급해 줄 만한 상황이 못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미국 LNG 수출의 1/5을 차지하는 텍사스 프리포트 터미널 폭발 화재 사건은 사태를 더욱 암울하게 만들고 있다. 불과 수년 전 에너지 지정학적 변화를 예견하며 화석연료의 수요피크를 대비하라던 피터 자이한(Peter Zeihan)의 호기로운 주장이 머쓱해진 상황이다.
조속한 수소경제 구현 열기 뜨거워
이런 혼란 가운데서도 에너지시장 붕괴를 극복하기 위해 EU가 5월 발표한 '리파워EU(REPowerEU) 정책의 핵심에는 재생에너지 보급 가속화와 조속한 수소경제 구현이 자리잡고 있다. 탄소중립을 통한 에너지 자립화 전략이다. 재생에너지는 이미 세계적인 주력산업으로 성장했고, 수소경제는 실물시장이 움직이고 있다.
에너지조사기관 블룸버그 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21년도 세계 에너지 설비투자 7746억달러 중 재생에너지는 3659억달러로 47.2%를 차지한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타계하기 위해 붐이 일었던 대체에너지 상황과는 비교가 안된다. 대체에너지 산업이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물렀다면, 지금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규모의 경제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즈의 수소정상회의(Hydrogen Summit)에 참석해 보니 EU의 러시아 가스를 수소로 대체하겠다는 의지로 뜨거웠다.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가 싼 곳을 찾아 그린수소를 저렴하게 생산하고, 그린수소만으로 수소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경우에는 중동지역에서 블루수소를 수입한다. 자원이 풍부한 곳은 어디든 달려가 수소사업을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사업자들이 득시글거렸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REPowerEU는 2030년까지 그린수소 1000만톤 자체 생산과 블루수소 1000만톤 수입 조달 목표를 설정했다.
우리나라도 몸살을 앓고 있다. 유가는 천정부지로 뛰고, 생산단가를 반영하지 못하는 전기요금으로 물가당국과 한국전력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혼란들을 계기로 탄소중립 여정을 재정비하고 새 출발의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마침 새정부 들어 원자력을 탄소중립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하니 그간 버거운 보급 목표에 부담이 컸던 재생에너지 산업도 재정비의 기회를 맞았다.
산업 성장시켜 탄소중립 가는 전략을
중국산 때문에 변방으로 밀려난 태양광 산업과 세계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풍력산업을 육성시키는 전략을 차분히 고민해보자. 경쟁력을 강화시켜 스케일업으로 국내 보급을 확산시키자. 산업을 성장시켜 탄소중립으로 가는 전략이다. 국내 수소경제의 큰 틀을 산업의 무탄소화 수단으로 다시 짜보자.
왜 수소경제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답이 나온다. 절실한 수요를 시장으로 연결시키는 전략이다. 이러다 보면 국내 에너지 산업이 더 이상 다른 주력산업들의 성장을 뒷받침해온 기간산업이 아니라 우리나라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줄 주력산업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지금 당장의 혼란은 고통스럽지만 탄소중립의 길은 가야만 하는 길이다. 영국 전설적인 록밴드 퀸의 멤버 프레디 머큐리의 생전 마지막 곡 '더쇼머스터고온'(The Show must go on)이 생각난다. "공연은 계속되어야 해! 기꺼이 웃으며 맞아 주겠어!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아!" 탄소중립이라는 공연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