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한국인은 땅의 민족, 정체성을 찾아야"

2022-08-08 11:20:12 게재

'경관'의 진정한 의미 고민

원칙 지키면 유대감도 회복

사진 남준기 기자

"소중한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는 일입니다. 한국인만큼 땅과 유대감이 깊은 민족도 없었는데, 깡그리 잊어버렸죠. 더 아픈 점은 잊어버린 줄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좀 심하게 표현하면 우리 한국인들이 자기 정체성도 없이 살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죠."

4일 내일신문과의 통화에서 성종상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공학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경관'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2000년 10월 굉장히 의미가 있는 유럽경관협약이 채택됐어요. 협약 내용을 간단히 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관은 어디에나 있고 좋고 나쁨이 있을 수 없다. 경관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역사적이고 개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지역성과 정체성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경관의 높낮이가 없고 '나의 정체성'을 이루는 한부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는 얘기죠. 그래서 그걸 함부로 훼손하거나 다르게 할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겁니다."

성 교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심사위원장이다. '이곳만은 꼭 지키자!'는 훼손위기에 처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행사다. 지역주민이나 시민단체 등이 제안한 대상지들을 환경·문화유산 전문가들이 현장심사 등을 통해 최종 확정한다. 성 교수는 문화재청의 제30대 문화재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기도 하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 보존이나 관리 활용 관련 사항을 조사하고 심의한다.

"열악한 현장, 활동가들의 헌신 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아 보전가치가 큰 자연자산이나 문화유산을 매입해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은 1895년 영국에서 시작됐다. 이후 미국 일본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로 뻗어나갔고 2007년에는 '세계내셔널트러스트기구'(INTO)가 발족했다.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는 시민운동인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현장의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고 성 교수는 말했다.

"우리의 소중한 자연환경이나 문화유산을 시민들이 나서서 보존한다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의외로 호응을 얻기도 쉽지 않고 아직은 우리 사회가 근본적인 취지 등을 공유하기에 아쉬운 면들이 많죠. 활동가들의 헌신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사실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의 핵심은 시민 성금을 통한 보전자산을 최대한 많이 늘려가는 일이다. 하지만 시민들이 이에 동참하는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게다가 어렵게 시민 기금으로 매입한 곳을 꾸준히 지키는 일도 녹록지 않다. 운동의 '현지화'가 중요한 이유다.

다행히 최근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민간단체로는 최초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의 적용을 받게 됐다. 이렇게 되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소유한 자산을 훼손하거나 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는 해당 부처의 장관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

"통합의 정신으로 내셔널트러스트 확산"

"말로는 우리가 통합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하죠. 요즘에야 잘 실현이 되지는 못하지만 한국문화는 사실 통합적이에요. 문화유산이나 생태, 자연을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이 시작된 영국의 경우 전체 자산 중 60% 이상이 정원입니다. 프랑스식 기하학적 정원과 반대로 18세기 영국의 자유곡선형 자연풍경식 정원은 현대적 의미의 조경에도 큰 영향을 미쳤죠. 그러한 소중한 유산을 시민들이 나서서 잘 보존해오고 있으니 여러 의미에서 부럽죠."

성 교수는 청와대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이라는 역사문화공간의 상징적 의미를 제대로 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유산이 될 만한 땅이에요. 오랜 기간 막혀 있다가 다시 돌아왔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사실 원칙대로만 하면 문제가 될 게 없어요. 물론 각자의 입장이 있을 수 있지만 조금 양보하고 통합의 정신으로 다가선다면 시너지 효과는 분명히 납니다. 누구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좀 부족한 사항들을 잘 모아서 하다보면 내가 혼자 할 수 없는 일을 정말 잘하게 되거든요. 그런 가능성을 자꾸 열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련기사]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 20회 맞아 … 대규모 개발계획 여전
[기고] 국토 개발과 보전, 여전히 풀지못한 '숙제'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김아영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