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국토 개발과 보전, 여전히 풀지못한 '숙제'

2022-08-08 11:20:12 게재
김금호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처장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창립하던 2000년부터 거의 매년 열린 행사다. 단체 초창기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진행하지 못한 2003년과 2004년을 제외하고 2020년까지 총 18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매년 행사에서 응모된 지역 중 개인 및 자치단체, 중앙정부의 개발계획으로 훼손위기에 처한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조건에서 시민공모전은 지역에서 환경과 문화유산 보전을 위해 활동하는 분들과 연대와 협력의 장이었다.

상대적으로 영세한 시민단체의 여건 속에서 특정 지역에서 진행되는 보전활동이 외부에 알려지기란 쉽지 않다. 시민공모전은 지역 시민단체에 보전활동의 홍보 계기로 이용되며 보전 대상지로 선정됨으로써 해당지역 보전에 실제 기여하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개발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토건세력들에 의해 자행되는 지역적 낙후와 경제 활성화를 빙자한 대규모 토목사업 중심의 이윤추구의 욕구는 쉽게 포기되지 않는다.

제1회 수상지 홍성 역재방죽 훼손

시민공모전에서 보전대상지로 선정됐음에도 무참히 훼손되거나 파괴된 자연·문화유산이 부지기수임이 그 사실을 확인해준다. 보전 대상지로 선정된 지역의 훼손 사례는 다양하게 나타난다.

인간의 자연생태계에 대한 과도한 개입에 따른 멸종이나 훼손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지역이 제1회 수상지역인 '역재방죽 내 가시연꽃'이다.

충남 홍성에 위치한 역재방죽은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창녕 우포늪과 함께 대표적인 멸종위기2급 가시연꽃 서식지였다.

2000년 제1회 공모전에서 보전 대상지역으로 선정됐지만 2006년 방죽 준설공사가 시작됐고 이후 2007~2008년 2차 준설, 그리고 2010년에 3차까지 준설로 인해 가시연꽃은 멸종되기에 이른다. 최근 일부 개체가 다시 살아나 복원 가능성이 보인다.

정권 차원에서 추진한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훼손된 사례는 면적과 건수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이명박정부가 추진한 사대강 사업이다.

사대강 사업으로 인해 안동 구담습지(2000년/1회), 남한강 바위늪구비(2008/6회), 여주 여강길(2010년/8회)은 강변 준설작업과 벌채, 자전거도로 및 체육시설 유치 등으로 훼손되었다. 8회 선정지역인 충주 비내늪 역시 일부 훼손되었다.

공모전 수상 후 천연기념물 지정되기도

이곳만은 꼭 지키자 시민공모전 수상작 중 보전에 성공한 사례들도 많다.

적성댐 건설예정으로 수몰위기에 처한 '600년 전통마을 귀미리'(2001년/2회)는 댐 건설 철회에 따라 보전될 수 있었다. 호남 '백운동 계곡'(2005년/3회)은 2019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돼 보전되고 있다.

같은해 선정된 폐허 상태의 '수덕여관'은 인근 사찰인 수덕사에서 매입해 보수복원을 마치고 일반인들에게 개방이 이뤄지고 있다. 2006년 4회 공모전에 선정된 마을 숲 '영덕 도천숲'과 '경산 스트로마톨라이트'는 3년 후인 2009년에 각각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오랜 시간 대기업이 골프장을 추진해 사회적 논란이 일었던 지역이 보전된 경우도 있었다. 인천 계양산(2007년/5회)과 굴업도(2009년/7회)가 그곳이다.

지리산댐 건설로 수몰위기에 처한 엄천강 용유담(2008년/6회)은 2018년 환경부가 지리산댐을 백지화하고 추가 댐 건설 중단을 결정함에 따라 보전될 수 있었다.

한탄강 비둘기낭(2008년/6회)은 한탄강댐 건설에 따른 수몰위기를 맞았던 주상절리 협곡이다. 한탄강댐은 여러 논란 끝에 규모가 축소되었고 비둘기낭은 수몰을 면할 수 있었다. 201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시민공모전을 통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유산으로 확보한 지역도 있다.

맹산 반딧불이 보전지역(2001년/2회)은 1996년 맹산 녹지개발에 반대하기 위해 '분당환경시민의모임'이 주도적으로 보전운동을 펼쳤다. 2015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와 함께 맹산 일원인 야탑동 442-1번지 609㎡를 매입할 수 있었다.

청주 구룡산 두꺼비 서식지(2005년/3회)는 두꺼비 서식지인 원흥이 방죽과 구룡산의 택지개발 반대운동을 기점으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벌였다. 그리고 2009년 (사)두꺼비친구들과 공동모금으로 두꺼비 서식지 핵심지역 1008㎡를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람사르 습지' 송도갯벌 훼손 위기

보전에 성공했지만 새로운 훼손위기에 직면한 곳도 존재한다. 송도갯벌(2009년/7회)는 인천에 마지막 남은 유일한 갯벌이다. 인천시는 '송도11공구'라고 불리는 갯벌을 외자유치를 위해 매립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와 국내외 NGO단체의 반발로 매립면적이 축소되었고 나머지 갯벌은 2009년과 2014년 '습지보호구역'과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법적 보전지역이 됐지만 송도갯벌을 관통하는 '수도권 제2순환도로'가 추진돼 환경단체가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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