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헝가리 시각으로 본 우크라이나 전쟁
헝가리 관련 뉴스가 국내에 소개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현지 정치 상황이나 한국의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해외 진출과 관련된 경제 뉴스에서 가끔씩 헝가리가 등장한다.
헝가리는 세계 5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국가이자 중국과 미국에 이어 세번째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집중적인 투자가 큰 역할을 했다. 2021년 한국은 동유럽의 전통적인 최대 투자국이었던 독일을 밀어내고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최대 투자국 지위에 올랐다. 8월 중순 중국의 CATL이 10조원가량의 헝가리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 전까지만 해도 올해 역시 헝가리의 최대 투자국은 한국이 될 것으로 현지 언론은 전망했다.
헝가리는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7개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슬로베니아를 제외하고 우크라이나와는 가장 짧은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그 짧은 국경도 거의 140km에 달한다.
폴란드, 체코와 함께 1999년에 나토에 가입한 헝가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어떤 형태로든 군사적인 개입이 없을 것이지만, 난민 수용 등 인도적인 지원에는 적극적으로 나설 것임을 천명했다.
1000만명에 못 미치는 인구를 가진 헝가리가 100만명이 넘는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난민 중 대부분은 헝가리를 떠나 다른 국가들로 이동했지만 임시 주거를 목적으로 헝가리에 난민 신청을 한 우크라이나인들도 3만명에 달한다.
한국 헝가리 최대 투자국으로 부상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나 각국의 입장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18세기 이후 수차례에 걸친 강제적 영토 분할 과정에서 러시아는 한 번도 빠지지 않은 가해자로 폴란드의 역사에 등장했다. 러시아의 팽창주의에 대한 폴란드의 역사적 고통은 현재 그들의 반러시아적 입장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이다. 헝가리의 역사적인 배경은 폴란드 상황과 조금 다르다. 헝가리 폴란드 체코 루마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들이 함께 삶의 터전을 이루고 있던 지역이다. 중세와 근·현대를 거치며 헝가리 인들이 이 지역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실제로 헝가리에 속한 영토였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체코에,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는 다시 헝가리에, 그리고 종전을 앞두고는 소련에 병합된 지역이었다. 1991년 소련 연방이 해체된 후에는 우크라이나에 속하게 되었다. EU 국가들 중 가장 많은 재외 동포를 가진 헝가리는 헌법에 그들을 명시할 정도로 동포와의 결속을 강조하고 있다.
유로마이단을 통해 급속하게 세를 불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및 극우 세력들은 이 서부지역에 거주하는 헝가리 인들에게 많은 탄압을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현지 헝가리인들의 권리 보호를 위한 단체에 방화와 테러를 가한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현지의 헝가리 정당(政黨)을 급습하기도 했다.
제도적으로는 교육과 언어 사용에서 소수 민족에 대한 차별을 입법화해 주변국으로부터 많은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난 2월 러시아 침공 직전에도 NATO 외무장관 임시회의에서 헝가리 외무장관은 이러한 우크라이나 내 헝가리인 차별 정책에 대해 항의한 바 있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헝가리 외무부는 이 지역에 있는 헝가리 동포들의 안전에 대해 여러 차례나 강조했다. 한국에 소개되는 관련 뉴스는 서구의 입장이 담긴 외신을 그대로 옮기거나 그 내용에 창작을 더하는 듯이다. 헝가리와 우크라이나의 역사적 갈등 배경에 대한 이해나 설명 없이 헝가리의 친러시아적인 행보만이 부각된다. 헝가리가 EU의 러시아 제재에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거나, 나토의 지원 무기 이송로로 헝가리가 길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할 뿐이다.
헝가리와 우크라이나 갈등 배경
우크라이나 사태와 동유럽, 그리고 한국은 서로 그 거리감만큼이나 연결의 끈이 느슨해 보인다. 하지만 2019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한국은 투자액 기준으로 헝가리 최대의 투자국이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인 노동 인력 없이는 공장 가동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우크라이나 인들이 현지의 한국 기업들에서 근무하고 있다.
한국과 헝가리,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이렇듯 자본-토지- 노동으로 단단하게 얽혀 있다. 생산요소가 초국가적으로 접목되어 있는 이 지역들에 대한 맥락적 이해를 위해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객관적 현실 인식이 더욱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