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어 밀어' 무리 형사처벌될까
살인 고의 입증 불가능 … 폭행치사나 상해치사 적용 가능
토끼머리띠 남성 신상유포 … "마녀 사냥 당하고 있어"
이태원 참사에 대한 고강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참사를 막지 못한 경찰의 형사책임과는 별도로 "밀어 밀어"라고 소리치며 골목 아래쪽으로 사람들을 밀친 시민들도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법조계 일각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 천주현 변호사(법학박사)는 2일 "폭행치사나 상해치사 등의 책임을 물어 무책임한 행동에 대한 경각심을 깨울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일부 무리들이 '밀어 밀어'를 외치고 다수의 사람이 이에 동조해 결국 다수가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를 유발했다"는 진술이 잇따랐다. 타인을 밀었던 사람들을 특정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지만 경찰이 폐쇄회로(CC)TV나 사건 당시 동영상 등을 분석해 가해자를 특정할 경우 형사처벌을 묻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일각의 분석이다.
우선 폭행죄나 상해죄 적용이 가능해 보인다. 타인을 밀어 유형력을 행사한 자체로 폭행이 성립할 수 있고, 부상에 이를 수 있음을 인식하고도 좁은 골목길에서 타인을 밀어 다치게 한 경우 상해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문제는 다수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 여부다. 형사전문변호사들은 폭행치사죄나 상해치사죄 적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밀집한 좁은 경사진 골목에서 강한 힘으로 사람을 밀거나 넘어트려 다치게 하는 자체가 폭행이나 상해(또는 폭행치상죄)에 해당할 수 있고 사망의 결과를 예상할 수 있었다면 폭행치사죄나 상해치사죄가 성립될 수 있다. 대법원은 "폭행치사죄는 폭행과 사망의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 외에 사망의 결과에 대한 예견가능성(과실)이 있어야 성립한다"며 "예견가능성의 유무는 폭행의 정도와 피해자의 대응상태 등 구체적 상황을 살펴서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가해자가 특정될 경우 이들이 압사 가능성을 예견할 수 있었는지 여부가 수사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살인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살인의 고의 입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천 변호사는 "실제로 밀었던 사람들이 불특정 다수가 사망에 이르러도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용인했다고 보기 어려워 살인 고의 입증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고의는 내심적 사실이므로 피고인이 이를 부정하는 경우에는 고의와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해 입증할 수 밖에 없고 이때 무엇이 상당한 관련성이 있는 간접사실에 해당할 것인가는 정상적인 경험칙에 바탕을 두고 치밀한 관찰력이나 분석력에 의해 사실의 연결상태를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시해왔다. 따라서 사고 예견이 가능했다고 해도 불특정 다수를 뒤에서 민 사실만으로 살인죄가 인정될 수 없어 보인다. 이보라 변호사(정오의 법률사무소)는 "상식적으로 사람이 압사해도 괜찮다는 살인의 고의까지 인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사망에 대해서는 고의 책임이 아닌 과실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네티즌들의 "밀어 밀어"를 외쳤다는 무리에 대한 범인 색출 작업에 나선 가운데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들이 고의로 밀었다"는 주장을 잇따라 내놨다. 이들이 사람들을 고의로 밀어 사망 사고가 났다는 것이다. 일부 네티즌은 가해자라며 한 남성의 신상을 유포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끼 머리띠로 지목된 해당 남성은 "저와 친구가 핼러윈 사고 현장 범인으로 마녀사냥 당하고 있다"며 "토끼 머리띠를 하고 그날 이태원에 방문한건 맞지만 사고 당시 저와 친구는 이태원을 벗어났다"고 항변했다. 그는 사고 당일 지하철 탑승 내역을 공개하기도 했다. 경찰은 사고와 관련된 SNS 영상물을 정밀 분석 중이라며 유언비어 확산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