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유승민 보수주의'는 가능할까
2017년 봄에서 여름으로 가던 어느 날, 대통령 선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바른정당 대통령 후보였던 유승민 전 의원을 수업시간에 특강 강사로 초청했다. 특강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학생들에게 먼저 사과부터 했다. 보수정치가 경제성장과 안보를 책임져야 하는데, 모두 망쳤다는 게 사과의 이유였다. (살짝) '감동'이 들었다. 마음을 담아 사과부터 하는 보수정치인을 본 적이 없었던 데다, 보수정치가 무엇을 중시하고 수행해야 하는지 무척 쉽고 간결하게 짚어주었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에게 감동을 받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다. 2015년 4월, 그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을 때 했던 국회연설을 들으면서도 마음이 좋았던 적이 있었다. 아마도 그것이 그를 특강에 초청한 이유였을 것이다. 특강이 끝나고 필자는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다. 학생들이 사인을 요청하며 줄을 서 기다리는 것을 본 것이다. 그는 줄을 선 학생들이 많아 꽤 시간이 걸렸는데도 한명 한명 다 사인을 해주었다.
2017년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는 6.7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에 이어 4등을 했다. 유의미한 득표를 한 후보에 한정할 때 그는 꼴찌인 심상성 후보(득표율 6.17%) 바로 앞, 즉 뒤에서 두번째였다. 하지만 특강에서 보여준 학생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도 '스타 정치인'이었던 것이다.
좋은 보수정치를 구현하기 위한 조건
필자는 그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로서 한 국회연설을 듣고선 '유승민 보수주의를 기대한다'는 칼럼을 썼던 적이 있다. 그때 그는 자신의 연설을 '진영을 넘어 미래를 위한 합의의 정치'라고 이름지었다. 인기가 없을 수 있으나 "미래를 열기 위해 공정하게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 연설의 요지였다. 그는 정부를 옹호하거나 야당을 공격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안들을 들어 협력해 달라고 요청하는 태도를 취했다. 새누리당의 과오와 한계도 인정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좋고 마음을 울리는 부분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문제를 먼저 다룬 것이다. 당시 그는 실종자 가족들이 "피붙이의 시신이라도 찾아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며 절규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상에 이런 슬픈 소원이 어디 있겠습니까"라며 호소했다. 실종자 가족들의 고통을 헤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연설 이후 필자는 한국의 보수정치세력, 당시 새누리당이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려면, 또 좋은 보수정치를 구현하려면 유승민 전 의원같은 정치인이 당을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그런 정치인이 실제 대표가 되는지의 여부를 갖고 한국의 보수정치가 좋아질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지난 2022년 대선을 전후로 한 정치행보를 지켜보며 실망한 부분도 있다. 다른 무엇보다도 그 역시도 냉전적 사고방식과 관점을 버리지 못했음을 확인할 때 그랬다. 하지만 아직도 (꼭 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와 같은 정치인이 보수를 대표할 때 보수정치가 발전할 것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이상적이지는 않아도 적어도 현실적으로는 그렇다고 본다.
최근 국민의힘 당 대표 주자군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그가 1등을 달리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윤심'을 얻지 못해 당선 가능성은 없을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고 한다. 당원만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약세라고 한다.
유승민은 친윤의 견제를 넘을 수 있을까
박근혜 정권의 몰락은 그를 내쫓으며 '진박논란'을 일으키면서 촉발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변화의 수단이자 보존의 수단'인 자를 팽했으니 남은 것은 몰락밖에 없었으리라.
최근 유승민 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이태원 참사 유족에 대해 진심으로 응답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이런 그를 윤석열정권이 어찌 대할지 지켜볼 일이다. '아직까지는' 박근혜 정권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친윤이 단일화하면 유승민 현상은 꺼질 것"이라는 공언이 나오고, 전당대회 일정도 유승민 전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최대한 늦춰서 내년 2월 말~3월 초에 한다는 관측을 들을 때 그렇다.
이런 상황을 그가 돌파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젊은 대학생들이 줄을 서서 사인을 받으려고 했던 그 마음을 기억해내는 게 돌파의 방법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