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작의 기후행동
유럽 스마트팜 시장을 뒤흔드는 영국의 도전
유럽의 소비자들은 전례 없이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에너지가격이 치솟으면서다.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 등 신선채소의 공급 부족과 식품가격 폭등은 또 다른 고통이다. 올 10월 기준 영국 소비자 물가지수는 전년에 비해 9.6% 올랐다. 물가지수를 끌어 올린 건 에너지뿐만 아니라 16.4%에 이르는 식음료의 가격상승이 크게 기여했다.
많은 소비자들은 농산물 생산에는 햇볕만 있으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시설원예 작물은 햇볕만으로 충분치 않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사용된다. 그 대부분은 난방용 에너지다. 2020년 유럽연합(EU) 회원국의 농림부문 직접 에너지 사용량은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3.2%였다. 반면 시설원예 면적 비중이 높은 네덜란드는 9.0%에 달했다. 최근에는 노지재배보다 스마트팜과 같은 시설재배를 선호하면서 농업용 에너지 사용량 역시 꾸준히 늘어났다. 2020년 EU의 총 에너지 사용량은 전년 대비 5.6% 줄었지만 농림부문은 0.6% 더 증가했다.
시설원예작물의 생산비 중 에너지비용은 10%를 가볍게 넘어선다. 인건비 다음으로 큰 비중이다. 올해는 우크라이나전쟁으로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이 줄어들면서 농산물 생산비에서 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커졌다. 프랑스 원예농가는 전년보다 최대 10배나 더 비싼 전기를 사용해야 하고 영국의 시설원예 및 양식어류 생산자는 난방비가 20배까지 오르면서 생산을 포기하는 곳이 늘었다.
에너지비용 고려한 시설원예단지 개발
농산물을 유통하는 슈퍼마켓은 갑자기 가격이 치솟은 채소류의 공급을 줄일 수밖에 없다. 장기적으로는 기후가 더 따뜻한 튀니지 튀르키예 이집트 같은 국가로 공급망을 다변화할 것이다. 그러는 사이 영국의 토마토 가격은 지난해 대비 이미 22%가 올랐다.
유럽에서 토마토는 우리나라의 배추처럼 중요한 채소다. 영국에서 소비되는 토마토는 연간 50만톤에 달하는 데 그중 80%는 수입이다. 오이와 파프리카도 비슷한 상황이다. 영국은 유럽 최대의 농산물 수입대국 중 하나다. 지금까지 영국의 시설원예는 온화한 기후대의 스페인이라는 지리적 장벽과 첨단 원예기술로 무장한 네덜란드라는 기술적 장벽을 극복하기에는 힘에 부쳤다.
그런데 상황이 변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가격 상승이라는 변수가 농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영국 농업이 달라지고 있다. 영국은 풍부한 재생에너지와 고효율 히트펌프를 결합시켜 난방비용을 크게 감소시켰다.
지금까지 시설원예단지는 대체로 농사짓기 좋은 땅, 즉 적합한 기후와 토양에서 시작했다. 영국은 게임의 규칙을 바꾸고 있다. 에너지비용을 낮출 수 있는 곳을 시설원예단지로 개발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이스트 앵글리아 지역 노리치(Norwich)에 신축된 28헥타르(ha) 규모의 스마트팜이다. 1920억원이 투자된 이 사업에서는 인근 하수처리장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히트펌프를 통해 회수한 후 온실에 공급한다.
이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면 영국 토마토 수요량의 12%를 생산하게 되고 온실가스 배출은 기존 온실 대비 75%가 줄어들게 된다.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저탄소농업'(Low Carbon Farming)사는 향후 4조원을 투자해 청정에너지 기반으로 연간 3TWh 열을 회수해 재활용하는 스마트팜을 영국 각지에 신축할 계획이다.
이 야심찬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8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게 된다. 영국의 식량안보를 향상하는 것은 덤이다. 벌써부터 네덜란드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공고하게 구축된 신선채소 공급망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영국의 시도는 기후변화와 탄소중립, 그리고 혁신적인 기술이 결합될 때 산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기후변화로 우리 농업 다시 갈림길에 서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을까? 에너지가격이 올라가면서 농가들은 농사용 전기가격이 인상되는 것을 우려한다. 그렇지만 농사용 전기 역시 에너지 전환과 탄소중립의 파고로부터 비켜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열원으로 쓸 수 있는 하수처리장과 발전소 등이 전국 각지에 밀도 높게 산재해있다.
영국의 시도가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아직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기후변화는 에너지 산업뿐만 아니라 농산물 공급망에도 큰 충격을 몰고 올 것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우리 농업은 다시 갈림길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