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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르 월드컵에 적용된 과학

2022-12-07 11:56:57 게재
윤경용 페루 산마틴대 석좌교수

축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번성한 스포츠다. 흔히들 축구 종주국으로 알고 있는 영국은 단지 현대 축구의 규칙만 정했을 뿐이다. 기원전 그리스나 로마 혹은 중국에서 시작됐다고 추측하지만 축구 행위 자체만 놓고 보면 인간 본성의 발로이기 때문에 단순히 기원에 대한 추측을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축구에서 선사시대 원시 수렵인이 사냥감 포획을 위해 동료들과 협동하며 들판을 내달리는 것과 유사함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인간 본성에 깊이 잠재된 사냥꾼 DNA가 발현되는 것이다. 축구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얻는 것도 그 때문이다.

축구는 공 하나를 가지고 서로의 골대에 골을 많이 넣으면 이기는 단순한 규칙을 가졌다. 그러나 개인의 능력보다는 팀워크가 중시되는 고차원적인 종목이다. 따라서 11명의 선수를 유기적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전술전략, 분석능력, 감독과 코치 등의 팀워크가 승패를 좌우한다. 그런데 현대 축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과학의 접목이다.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과학기술 적용

축구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축구공에 과학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많았다. 축구공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공인구 제도가 도입됐는데 당시 흑백TV에서 공이 잘 보이도록 검은색 오각형 흰색 육각형을 조합해 만든 '텔스타'다. 지금도 이 형상은 축구공의 아이콘으로 자리하고 있다. 최초로 첨단과학이 접목된 축구공은 2002년 한일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로 기존의 축구공과는 다른 독특한 탄성을 가지도록 설계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의 공인구 '알 리흘라'는 내부에 속도와 방향을 측정하는 관성센서(IMU, Inertial Measurement Unit)와 공의 동작 및 위치정보를 1초에 500회 정도 송출할 수 있는 광대역통신센서(UWB)가 장치된 것이 특징이다. 이는 패스 순간의 미세한 공 움직임을 전송한다. 이러한 관성센서는 보통 순항미사일 인공위성 무인항공기 자동차 네비게이션 뿐만 아니라 스마트폰에도 장착돼 항법과 제어, 그리고 스마트폰의 동작을 돕는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은 부분에 과학기술이 적용됐다. 축구공 말고도 다양한 센서 기반의 인공지능을 적용한 것이 그 예다. 대표적으로 오프사이드 판독기술(SAOT) 시스템인데, 이는 경기장 지붕에 설치된 12대의 특수카메라가 실시간으로 측정한 선수들 신체 29곳의 동작 데이터와 공인구에서 송출된 축구공의 동작 및 위치정보를 종합해 인공지능이 오프사이드 여부를 판정한다.

또한 한국과 포르투갈과의 경기 결승골의 주인공 황희찬 선수가 입었던 브라탑은 선수의 몸에 부착돼 경기력을 측정하는 전자성능추적기(EPTS: Electronics Performance and Tracking System)로 관성센서는 물론 심박센서, 위성위치센서(GPS) 등이 선수의 모든 경기 정보를 기록한다. 이로 인해 선수들의 활동량과 범위, 스프린트 횟수와 거리, 경로 등이 실시간으로 벤치로 전달돼 선수의 부상 및 피로도 등의 상태정보는 물론 전술 변화를 결정하는 자료로 쓰인다.

인공지능 기술은 경기장에도 적용되었는데 40~50℃를 웃도는 중동의 더운 날씨에도 경기장 내부가 20℃ 내외를 유지하도록 외부 1km 밖에 에너지 센터를 위치시키고 이곳에서 태양광 발전으로 만들어진 찬 공기를 그라운드는 물론 객석 의자까지 공급되도록 조절한다.

각종 안전사고를 예방하고자 컴퓨터 인식기술이 탑재된 수만개의 카메라가 경기장뿐만 아니라 버스 지하철 정류장에 설치돼 인파의 규모, 이동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인공지능이 경비인력을 자동으로 적재적소에 재배치하도록 했다.

현실에서도 유용한 안전사고 예방 기술

이렇듯 인식장치로 통칭되는 컴퓨터 비전(CV, Computer Vision)은 객체인식 얼굴인식 뿐 아니라 대규모 인파의 이동경로 분석과 안전사고 예방 등 다양한 곳에 적용될 수 있다. 이번 월드컵에 적용된 안전사고 예방 기술은 기술적 난이도도 높지 않을 뿐 더러 적은 비용으로도 인프라 구축이 가능해 저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있는 기술로 뽑힌다.

이와 같은 첨단시스템이 도처에 도사린 위험을 감지하는데 적절히 적용되었다면 이태원 참사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윤경용 페루 산마틴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