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시뮬레이션 우주와 메타버스

2022-12-14 11:19:03 게재
안동욱 ㈜미소정보기술 대표이사, 빅데이터 전문가

어느 날 장자는 너무 현실 같은 꿈을 꾼다. 나비가 되어서 훨훨 나는 꿈인데 그 꿈이 너무 현실 같아서 깨고 난 후 장자는 생각한다. 내가 나비의 꿈을 꾼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지금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다. 물아의 경계를 잊음, 또는 모호한 존재가치, 인생의 무상함 등으로 해석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확신도 이른바 '꿈의 가설'을 통과한 이후에 나오는 진리다. 가상현실 또는 메타버스를 풀어서 얘기할 수 있는 가장 설득력 있는 철학적 스토리라 하겠다.

지금 눈앞의 모든 것은 현실이 아닐 확률이 높고, 사실은 정보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 정보를 습득하고 이 정보를 해석하는 프로그램만 돌아가면, 사람은 그걸 현실이라고 느끼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시뮬레이션 우주론'이다.

일론 머스크는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 아닐 확률은 10억분의 1이다'라고 얘기했다. 영화 '매트릭스'에선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디지털로 이루어진 가상이었다는 걸 주인공 네오가 깨닫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가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양자역학이 뒷받침해준다.

보이지 않는 것은 정보로만 존재

'통 속의 뇌'라는 실험이 있다. 우리의 몸에서 뇌만 분리해서 어떤 통속에 넣고 생명을 유지하게 한 후에 우리가 나누는 대화나 여러가지 외부의 자극을 전기신호로 뇌에게 보내면, 뇌는 자신이 직접 몸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느낀다는 착각을 일으킨다는 가설이다. 우리가 이 통속의 뇌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는 것처럼, 지금이 실제 세계인지도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양자역학에서는 특히 관찰을 중요시한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는 유명한 사고실험이 있다. 내부를 볼 수 없는 상자에 고양이와 독극물이 담긴 병을 넣는다. 독극물 병에는 특수한 장치가 있어서 1시간 뒤 병은 50% 확률로 깨지거나 깨지지 않는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1시간 뒤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었거나 둘 중 하나의 상태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죽은 상태와 살아있는 상태가 각각 50% 확률로 동시에 존재하며 인간이 관찰을 할 경우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게임을 보면 맵이 있다. 내가 가지 않은 곳은 까맣게 표시되지만, 내가 간 곳은 밝게 표시된다. 컴퓨터가 모든 걸 시뮬레이션하면, 컴퓨팅 요소나 자원을 너무 많이 써서 컴퓨터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편법이다. 가지 않은 곳을 관찰에 의해 활성화하지 않으면 정보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상태인 것이다. 즉 보이는 것만 실체고 그 뒤에 보이지 않는 것은 정보로만 존재한다. 이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핵심이다.

인간은 현실을 초월한 세계를 메타버스를 통해 구현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초현실 실감 미디어를 통해서 인간이 착각하기 쉬운 시각적 요소로만 구현하면 되는 것일까? 현실과 가상을 드라마틱하게 연결하는 세계관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구현된 디지털과 현실의 경계를 오간 가장 몰입도가 있었던 게임은 1990년대 다마고치였다. 다마고치는 반려동물을 키울 수 있는 작은 게임기다. 핸드폰도 없을 시절 작은 게임기 안의 반려동물에게 배고프면 밥을 주고, 아프면 약도 챙겨주고, 청소도 해주면서 현실의 반려동물로 착각했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이 동물이 배고플까봐 수업시간에도 계속 밥을 주고 살피고 산책도 시켰다.

인간이 만드는 시뮬레이션, 메타버스

이런 미디어의 콘텐츠가 자신의 친구가 되고, 키우는 동물이 되고, 아니면 자기 자신 그 자체라는 착각이나 몰입을 일으키는 순간에 메타버스가 완성된 것이다. 이 세계관이 크든 작든 메타버스의 세계관을 완성시킨 것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메타버스 시장 규모는 2020년 4787억달러에서 2024년 7833억달러로 크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컨텐츠에 대한 창의력이 좋은 한국에서 마음껏 상상을 즐기고 재미난 이야기를 기획하고 이걸 플랫폼으로 설계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즐길 수 있는 메타버스 전문가를 많이 육성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