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5년 뒤의 민주노총

2022-12-16 11:52:05 게재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

화물연대가 정부의 무지막지한 공세를 견디다 못해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기대했던 연대파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조건에서 외롭게 투쟁을 이어가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린 결과였다. 민주노총은 만만치 않은 후유증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된다. 반격을 위해 절치부심하겠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서울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단행했으나 하루 만에 끝났다. MZ세대 조합원의 반발에 따른 결과였다. MZ세대가 중심인 3노조의 경우는 파업에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았다.

이는 향후 민주노총의 성격 변화를 예고하는 대단히 중요한 단초라고 할 수 있다. 과연 5년 뒤 민주노총은 어떤 모습일까? 해답을 찾자면 민주노총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1995년 민주노총은 출범과 함께 한국 사회의 한축으로 우뚝 섰다. 민주노총은 1996년 말 김영삼정부의 개악된 노동법 안기부법 날치기 시도에 총파업으로 대응했다. 결국 김영삼정부는 두손을 들고 말았다. 신생 민주노총이 정부와의 맞대결에서 승리한 것이다. 민주노총은 세상을 바꿀 핵심 동력으로 떠올랐다.

민주노총 내 세대교체가 의미하는 것

비극은 외환위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참여한 가운데 노사정위원회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산을 뒷받침하는 각종 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타협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합의 내용이 야기할 파괴적 영향을 고려하면 최소한 '한시법'으로 못박았어야 했다. 노동계 합의를 타협이 아닌 백기투항으로 간주한 근거였다.

대가는 혹독했다. 노동현장에는 정리해고 칼바람이 불고 비정규직이 빠른 속도로 확산해 갔다. 노조가 거센 폭풍을 막기에는 여러모로 역부족이었다. 조합원들은 즉각적으로 노조가 자신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져줄 수 없음을 간파했다. 각자도생이 노동현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언제 닥칠지 모를 정리해고에 대비해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한 생존의 아귀다툼이 현기증 나게 벌어졌다.

일련의 과정이 누적되면서 민주노총의 주축인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의 소득 수준은 꾸준히 향상되어 갔다. 마침내 우리 사회 중상위 계층의 수준에 이르렀다. 그 결과 자신의 처지를 보는 시각에서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과거 노동자들은 자신의 삶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투쟁했다. 하지만 오늘날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은 자신의 자리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어 안달이다. 상당수 노조는 퇴직자 가족 우선 채용을 단체협약에 명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주축인 대기업과 공공부문 정규직은 현상유지에 집착하는 기득권 세력의 일부가 되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이 나름대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격동의 시대를 거치며 이념세례를 받은 세대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들 이념세대가 정년을 맞이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는 데 있다. 자연스럽게 조직의 중심이 지금의 젊은 세대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젊은 정규직은 상상 초월의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경우다. 기득권에 대한 집착 정도가 선배 세대보다 훨씬 강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기득권 유지 이외에 다른 문제에 관심 두기를 몹시 꺼린다. 선배 세대가 외부 연대투쟁에 나가는 것조차 못마땅히 여긴다. 구시대 이념의 영향에서도 완전히 벗어나 있다. 민주노총은 시간이 흐르면서 이념의 옷을 벗고 기득권 세력으로서 맨살을 드러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중소·벤처기업 노동문제, 다른 접근 요구

민주노총 반대편에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벤처기업 노동자들이 있다. 이곳 노동자 조직률은 2%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한국노총 소속이다. 중소·벤처기업 노동자들에게 노동운동은 기피대상이 되어 왔다. 노동운동 관행인 '노동의 배타적 옹호'는 모든 걸 잃게 만들 수도 있다고 본다. 민주노총 또한 불신의 대상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몫이 늘면 자신들의 몫은 줄어든다고 여겨왔다.

이래저래 중소·벤처기업에서의 노동문제 해결은 전혀 다른 접근을 요구한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큰 숙제다.

박세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상임이사